기다려지는 뮤지컬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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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30분 전, 무대 위에는 이미 출연자들이 등장해 한바탕 신나는 즉석 연주를 쏟아내고 있다. 안내원들의 통제에 따라 몇몇 관객은 아예 무대로 올라가 박수치고 출연진과 눈을 맞춰가며 음악을 즐기고 있다. 길게 늘어서 줄을 선 사람들도 무대에 오를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뮤지컬 음악에 반쯤 심취해 있다. 지난 여름, 뉴욕 출장길에서 만났던 신작 뮤지컬 ‘원스(Once)’의 공연장 풍경이다.

제66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열린 ‘원스’의 공연 무대. | AP연합뉴스

제66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열린 ‘원스’의 공연 무대. | AP연합뉴스

해마다 6월에 열리는 미국 공연계의 큰 잔치인 토니상 수상식에서 올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단연 뮤지컬 ‘원스’였다. 11개상 후보에 올라 최우수 뮤지컬상, 작곡상, 남우 주연상을 포함해 모두 8개상을 휩쓸어버리는 대 파란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화제가 된 것은 영광의 수상자들이 아닌 리메이크 뮤지컬 ‘포기와 베스’의 여주인공 베스역의 오드라 맥도날드에게 아쉽게 여우주연상을 뺏긴 체코 이민소녀 역의 크리스틴 미놀티였을 정도로 ‘원스’의 인기는 가히 절정을 이뤘다.

뮤지컬의 원작은 2006년 발표된 아일랜드산 영화다. 음악이 워낙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작품이라 어떤 평론가는 뮤지컬 영화 혹은 뮤직 드라마로 구분 짓기도 했다. 연출을 맡았던 존 카니는 저예산 독립영화 감독으로 유명한데, 그 스스로가 록 밴드의 베이스 주자로 활동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영화 ‘원스’는 카니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16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독립영화였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은 후 극장가에 유포되자마자 3개월 만에 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의 인기는 곧 전세계로 이어져 주제가격인 노래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가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주제가상을 받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벌어들인 박스 오피스 매출 규모만 약 2000만 달러,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220억원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뮤지컬 <원스> | AP연합

뮤지컬 <원스> | AP연합

뮤지컬의 시작은 물론 영화에서 비롯됐다. 요즘 흔히 말하는 무비컬(영화와 뮤지컬의 결합)인 셈이다. 스크린 버전이 저예산이지만 음악적 감동에 뿌리를 둔 것에 착안해 무대에서도 배우가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 형식에 미니멀리즘적인 무대 세트를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덧붙여졌다. 몇몇 음악은 미국 대중들의 취향을 반영해 컨트리 스타일의 노래들로 추가 변경됐지만, 대부분은 영화음악을 만들었던 남녀 주인공 - 글렌 한사드와 마케타 이글로바의 원곡들이 그대로 무대에 등장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덕분에 ‘폴링 슬로울리’는 물론 ‘이프 유 원트 미(If you want me)’나 ‘골드(gold)’와 같은 영화 속 명곡들은 무대 위 라이브 연주와 노래에 맞춰 새로운 생명력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처럼, 영화 속 음악은 무대에서 라이브로 재연되며 더욱 탄력이 넘치는 생동감을 구현하게 됐다.

브로드웨이의 흥행 뮤지컬들이 그렇듯, 이 작품 ‘원스’ 역시 글로벌 마켓으로 그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서양 건너 같은 영어권의 대형 뮤지컬 시장인 웨스트 엔드 극장가에서는 내년 4월쯤에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Blood brothers·우리에겐 ‘의형제’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가 24년간 공연돼온 런던의 피닉스 극장에서 역사적인 막을 올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국에서의 흥행이 영국에서의 신기록 달성으로 재연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르면 내년쯤 국내 무대도 시작될 것 같다. 라이선스 뮤지컬에 있어서 국내 뮤지컬 산업계는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발 빠른 행보를 보여준다. 기왕이면 멋지게 완성도를 갖춘 제대로 된 번안 뮤지컬로 등장했으면 좋겠다. 내년 달력에 꼭 적어둘 만한 일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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