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은 타지에서 재를 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오지이다.
연간 약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주왕산은 가을 무렵에 더욱 빛을 발한다. 주왕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은 태백산맥의 지맥으로 해발 720m로 연화봉·시루봉 등 산봉과 주왕굴·연화굴 같은 굴, 그리고 제1·2·3폭포와 절골계곡 등 갖가지 비경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새벽의 비경을 선사하는 주산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풍경이 유명하다.
예로부터 푸른 소나무의 고장으로 불리던 청송은 말 그대로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아름다운 사계를 뽐내는 주산지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깊은 산 어느 가마골에서 내내 불을 때고 흙을 빚어온 늙은 도공의 삶을 물어볼 셈이다. 편안한 발걸음으로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주왕산도 올라보고, 송소고택까지 둘러보는 여정이다.
고요히 깨어나는 신비로움과 마주하기
아직 햇귀가 차오르지 않은 새벽 주산지로 오른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때 만들어진 저수지로 길이 100m, 너비 50m, 평균 수심 7.8m의 조그만 산중 호수이다. 입구에서 숲길을 따라 약 500여m를 가벼이 걷는다. 주산지로 향하는 길목에 부지런한 산꾼은 없다. 그저 일 없이 늘 새벽의 물안개를 찾는 지역 사진가들의 모습이 맑은 저수지에 적막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청송을 찾으면서 주산지를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주산지는 아름다운 새벽의 비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물안개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주산지의 새벽 풍경은 신비롭다.

고만경씨는 문경백자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 생활도자기인 청송백자의 기능보유자다.
하지만 그만큼 마주하기가 쉽지 않은 터이기도 하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지역의 사진가 김모씨는 “사실 주산지는 왕버드나무가 꽃을 피우는 늦은 봄이나 오색 단풍이 들기 시작한 가을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쯤이면 일교차가 크기도 해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빛이 살짝 드리운 풍경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신비함을 연출합니다. 자주 찾는 곳이지만 찾을 때마다 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주산지가 마치 여인의 모습을 닮아 있다고 했다. 주산지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는 왕버들의 자태는 물빛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네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햇귀가 차오르기 시작하자 비껴 드는 햇살이 왕버들의 실루엣을 금빛으로 물들인다. 깨끗한 숲에서의 맑고 고운 여인네의 노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산지를 가장 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30여 그루의 왕버들 자태이다. 잠시 머무르며 아침 햇살 내려앉은 호수에 마음을 두니 버드나무와 구름, 안개와 바람이 호수를 지난다.
내려오는 길, 이미 새벽의 서두름은 온 데 간 데 없다. 잘 조성된 숲길을 내려오니, 벌써 장을 꾸려 나온 마을 아주머니 서넛이 앞뒤도 없이 붉은 사과를 내민다. 청송의 사과가 꿀보다 달고 단풍보다 붉다며 한 조각을 내어민다.
주왕산에 오르기 전 청송백자(청송군 문화유산 제1호) 터를 둘러볼 작정이다. 부동면 신점리 법수골에 위치한 청송백자전수장을 찾아간다. 아직도 마을로 드는 들머리에 자리한 당산터에는 외지인을 경계하는 액막이 금줄이 온전히 남아 있다. “매년 정월 보름쯤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내는 곳입니다. 가마에 불을 넣을 때나 마음이 흐트러질 때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곳이지요.” 아랫녘까지 마중을 나온 고만경옹(청송백자 기능보유자)이 당산터에서 객을 맞이한다.

연간 50만명이 찾는 주왕산은 가을 무렵에 빛을 발한다. 연화봉, 시루봉 등의 산봉우리와 주왕굴, 연화굴 등 갖가지 비경을 품고 있다.
늙은 도공의 혼이 담긴 청송백자
“청송백자는 청송사기라고도 불립니다. 약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청송의 도자기술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곳 터는 청송백자의 원료인 도석이 많이 산재해 있습니다. 가마터 뒤편에는 오래 전 광산이 옛 세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요.” 청송백자의 복원을 위해 지난 2009년 개관한 전수관은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가마굴, 사기움(공방), 전시관과 체험관을 조성해 편안히 들어앉아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청송백자는 문경백자와 함께 경북을 대표하는 조선시대 대표 생활도자기입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발, 대접, 접시 등 막사발 종류 등이 대표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흙 대신 도석이라는 돌을 빻아 만드는데, 이것이 청송백자의 특징입니다. 다른 도자기보다 기벽이 매우 얇고 가벼운 데다 설백색의 흰색이어서 일반 백자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사기공방에서 일을 배우다 1958년을 마지막으로 가마가 문을 닫을 때까지 15년간 일하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청송자기의 복원을 위해 노력한 끝에 전통을 살리면서 청송자기의 기법을 터득해 다시 가마터에서 마지막 혼을 빚고 있는 셈이다.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주왕산의 절경
청송백자전수관에서 내려와 청송을 대표하는 주왕산으로 길을 잡는다. 청송은 타지에서 재를 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오지이다. 덕분에 청송은 경북 최초의 ‘슬로 시티’로 깨끗한 자연이 잘 보전되어 있고 아름다운 비경이 숨어 있다. 연간 약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주왕산은 가을 무렵에 더욱 빛을 발한다. 주왕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주왕산은 태백산맥의 지맥으로 해발 720m로 연화봉·시루봉 등 산봉과 주왕굴·연화굴 등 굴, 그리고 제1·2·3폭포와 절골계곡 등 갖가지 비경을 품고 있다.
주왕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구친 기암절벽이다. 각양각색의 형태를 지닌 기암을 배경으로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또 주왕산의 특징 중 하나가 비교적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을 자주 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그리 어려울 것이 없는 산이라는 것. 입구에서 숲길을 따라 오르면 학소대, 급수대 등 기이한 봉우리가 지루함을 달랜다. 비경에 눈길을 주며 30여분 남짓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먼저 마주하는 것이 제1폭포다. 떨어지고 꺾이는 폭포의 용틀임 덕에 용추폭포라 불린다. 다시 1㎞ 더 오르면 제2폭포에 다다른다. 절구폭포라 부르는데, 떨어지는 폭포수가 장관이다. 용추폭포에서 내원동으로 약 1.2㎞ 가면 제3폭포인 용연폭포. 주왕산 폭포 가운데 가장 깊숙한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데, 깊이 파인 소가 폭포수와 어울려 천혜의 비경을 그려낸다.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주왕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다.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청송 심씨 심처대의 7대손인 심호택이 건축한 송소고택.
파천면 덕천리에 위치한 송소고택으로 길을 잡는다.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청송 심씨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께 건축한 고택이다. 청송 지방에 흩어져 사는 심씨들은 대개 심원부의 후손. 마을 토박이들의 입으로 전해오기를, 심부자의 재력은 9대 2만석으로 해방 전 일제시대까지도 2만석 부자였다고 전해진다. 건립 당시 민가로서 최대 규모인 99칸으로 지어진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홍살을 설치한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니, 팔작지붕을 얹은 큰 사랑채에서 품이 너른 양반의 풍모가 그려진다. 집 전체가 ㅁ자형 남동향의 집으로 대문채와 사랑채, 작은 사랑채, 안채, 별채의 앉음새가 장대하면서도 참 편안하다. 안채는 들어서니 역시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마당가에 살림살이가 그대로다. 안채는 사랑채 앞마당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헛담을 꾸며 놓았다. 잠시 너른 대청마루에 앉으니 높은 하늘 아래 들녘으로 가을색이 완연하다. 짧지 않은 추석 연휴, 조금은 한가로운 마음으로 길에서 벗어나 찾는다면 가을 내내 마음이 그윽할 듯하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