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다. 주인공이 아이돌 그룹이 아닌 싸이(PSY)라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예열 과정이나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이뤄진 일이라 정말 뜬금없다.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가수에 대해서는 출국하는 순간부터 열띤 보도가 나오게 마련이다. 이후에는 누구와 만났는지, 어떤 유명 뮤지션과 협업할 예정인지 알리는 소식이 이어진다. 큰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하거나 차트에 진입하면 엄청난 쾌거인 양 그 가수를 떠받드는 기사를 내보낸다. 이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싸이는 그 어떤 야단스러운 작업 없이 갑작스럽게 나라 밖 대중에게 주목을 받았다.
이와 같은 결과는 거의 뮤직비디오에 기인한다. 팝 시장에 나서겠다고 따로 싱글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부단히 공연을 펼친 것도 아니니 뮤직비디오가 인기의 첫째 가는 공훈이라 함이 당연하다. 유튜브를 보면,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뮤직비디오로 칭송되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Thriller’는 2009년 10월에 영상이 올라온 후, 3년에 달하는 기간 중 1억17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편,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사이트에 올라온 지 한 달 반밖에 안 됐음에도 조회수가 8월 말 현재 무려 7000만회에 달한다.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다는 증거다.
날렵함과는 거리가 먼 체형으로 춤을 추는 모습, 코믹함을 배가하는 과장된 특수효과, 중독성 강한 단순한 안무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한국 문화를 모르는 이라고 할지라도 보편적으로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다. 특히,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춤동작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동참을 유도한다. 복잡하거나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춤이 아니기에 ‘한 번 춰 볼까? 나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인들까지 싸이를 흉내내고 패러디 영상을 찍는 유행이 일어난 것은 이 요인이 크다.
일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음악 역시 싸이를 세계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게 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현재까지 팝 음악의 최고 인기 장르는 단연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다. 팝 시장의 중심인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일렉트로니카가 권세를 누리는 중이다.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마찬가지지만, 싸이가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들고 나왔기에 외국인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날카로운 전자음과 심장을 뛰게 하는 리듬은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만국 공용어다. 여기에 도드라지게 흐르는 ‘sexy lady’, ‘사나이’ 가사는 중독성을 높인다.
덕분에 가사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반주가 먼저 청취자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리고 누구든 이런 클럽 지향형 음악이 난해한 고민을 던지거나 숭고한 전언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가벼운 노래가 난립하는 시대이기에 ‘강남 스타일’은 세계로 나아가는 물살을 더 쉽게 탔다.
싸이는 LA다저스 경기장에서 춤을 추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미국 시장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아이튠즈 뮤직비디오 차트 정상을 밟았으며 노래 차트에는 44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 인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로스 델 리오(Los Del Rio), 조르디(Jordy), 스캣맨 존(Scatman John) 등 뜬금없이 스타가 됐다가 한순간에 사라진 가수도 많다. 흥미 위주의 가벼운 음악은 시장에서 지구력이 떨어진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