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세력 문제점은 친북 성향”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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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제가 제기된 게 4월 20일이었다. 이제 1개월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여전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뉴스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대선에서 의외의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보다 더 많은 기사가 생산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언론 환경이 통합진보당에, 또 진보진영에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들이 관련 뉴스들에 눈과 귀를 모으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주목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태의 포인트가 전혀 다르게 변했다는 것이다. 애초에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관련한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사퇴 여부는 사실 부차적인 사안이 되어버렸다. 대중들의 주된 시선은 통합진보당 안에 일반대중이 용인하기 어려운 북한 추종세력이 정말 존재하는지 여부로 옮겨왔다.

[KSOI의 여론스코프]“진보세력 문제점은 친북 성향” 26.1%

지난해 조사에서는 13%
사퇴를 요구받는 인물들 및 구당권파는 억울한 게 있을 수 있다. 사태 전개과정에서 과장된 게 있을 수 있다. ‘총체적’ 부정선거가 아닐 수 있다. ‘조직적’ 선거개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당과 정치인은 아주 작은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대중들이 불편해하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중은 중요하지 않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실제(reality)보다 대중들의 인식(perception)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정희 전 대표는 혐의만 갖고 죄를 묻는 것은 무죄추정 원칙에 위배되므로 비례대표를 사퇴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근대 형사법 원칙에 대한 이해는 깊지만 현대 대중정치에 대한 이해는 없는 말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영역에서는 법적 문제가 없어도 책임을 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선거를 치렀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 정당 지도부는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아무런 위법사항이 없지만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게 대중들을 의식하고, 대중들에게 반응하는 정치의 모습이다.

통합진보당 내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여론지형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 위원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이 올랐다. 총선이 끝나고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놓고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인 박 전 위원장의 지지율이 더 오르고, 무관심 속에 전당대회를 치른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더 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통합진보당 사태가 일정 정도 대중들의 안정 지향성을 야기했다고 본다. 보수층은 보수 경향을 더 강화하고, 중도층도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게 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보수정치인, 보수정치세력에 대한 추가적인 선택이 나타난 것이다.

5월 조사에서는 진보세력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았다. ‘정책능력 부족’이 26.5%, ‘호감가는 정치인 부족’ 14.3%, ‘친북적 성향’ 26.1%, ‘사회적 포용력 부족’ 26.6% 등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친북적 성향에 대한 선택 비율이다. 이번에 26.1%였는데 동일한 문항으로 지난 2011년 6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13%에 그친 바 있다. 두 배가 높아진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에 아킬레스건일 수 있는 북한 인식에 대해 앞으로도 집요하게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상당 기간 한국정치의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다가오는 19대 국회 첫 국정감사도 자칫 ‘종북 국감’이 될지도 모른다. 신속하게 대중들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정리가 필요하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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