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 디바이드
원제 The Divide
감독 자비에르 젠스
출연 로렌 저먼, 마일로 벤티밀리아
제작국 케냐, 영국, 미국
등급 19세 관람가
상영시간 110분
장르 스릴러, 공포
개봉일 2012년 5월 10일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략적인 이점이 있다. 우선 캐릭터들이 선명해진다. 사건에 집중하기 쉽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조건으로부터 제약이 생기고, 이 제약은 갈등을 추동하는 근사한 장치가 된다. 이를테면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은 밤마다 흡혈귀들 때문에 집안에 고립당한다. 반드시 낮시간 동안 생활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마쳐두어야 한다. 이런 제약이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린다. 그와 같은 갈등을 가지고 멋진 챕터 하나를 꾸려나갈 수 있다.
자, 만약 이 이야기가 영화라면 더욱 훌륭한 장점 하나가 따라붙는다. 더 적은 배우, 더 적은 세트, 더 적은 촬영기간. 결과적으로 제작비가 절약된다! <이블데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맨 프롬 어스>와 같은 저예산 수작들이 그렇게 탄생되어 왔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폐쇄 공간에서의 서사에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집중되는 만큼 단점도 더 크고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전반의 호흡과 연출에의 복안, 특히 후반부와 결말이 잘 계획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폐쇄된 공간’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많은 종류의 영화들이 뚜렷한 계획 없이 그저 설정만으로 관객에게 구애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디바이드>는 핵 공격을 받는 도시의 모습을 주인공의 시점으로 보여주며 시작된다. 주인공을 비롯한 8명의 생존자들이 간신히 건물 지하실에 다다른다. 지하실에는 관리인이 만일을 대비해 만들어 둔 벙커가 있다. 모든 통신시설은 파괴되었다. 관리인은 피폭의 가능성을 우려해 문을 폐쇄시킨다.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우익 성향의 관리인은 리더를 자처한다. 물과 식량은 한정되어 있다. 지하실은 배설물 냄새로 가득 찼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존자들은 절박해진다. 의외의 사실들이 밝혀지고 상황은 더욱 극한으로 치닫는다. 급기야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디바이드>를 연출한 자비에르 젠스 감독은 호러, 액션 장르에 정통한 신예 감독이다. <프런티어>는 <싸이코>와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를 변형한 매우 영리한 소품이었다. <히트맨>은 그가 액션 연출에도 재능이 있음을 증명한 영화였다. 최신작 <디바이드>의 미덕은 감독이 이 폐쇄된 공간에서의 게임을 즐길 줄 아는 이야기꾼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분열하고, 서열이 생기고, 한정된 자원이 부조리한 방식으로 분배되고,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기며, 상황으로부터 초래된 인간의 추악한 표정들이 나열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선한 의지는 끝내 누구에게서도 발휘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거기에 처음부터 작정하고 비뚤어진 악한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궁지에 몰렸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끔찍한 욕망과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모습이 다수의 디스토피아 영화들 속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디바이드>에서도 반복된다.
문제는 그 모든 풍경이 너무 익숙하다는 데 있다. 처참하고 끔찍하지만 새로운 구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폐쇄 공간에서의 심리극을 그린 <엑스페리먼트>와 비교해보면 좀 더 뚜렷해진다. 자기 역할을 규정하고 상황에 함몰돼 원칙이 아닌 맥락만이 남는 순간 괴물이 탄생한다. 물론 중요한 메시지다. 그러나 같은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면 <디바이드>보다 <엑스페리먼트>를 한 번 더 보는 편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명확하다.
쉽사리 단조로워진 이야기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이 선택한 건 음모론이다.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 위에 정부 주도의 모종의 실험이 존재한다는 음모 서사가 끼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략은 <디바이드>를 이도 저도 아닌 산만한 영화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만다. 애초 후반부에 대한 복안이 부재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좋은 배우들과 근사한 연기가 처음부터 예정된 한계로 인해 낭비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건 정말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허지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