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 위대한 곰
원제 DEN KÆMPESTORE BJØRN
제작국 덴마크
제작연도 2011년
감독 에스벤 토프스 야콥슨
장르 애니메이션
상영 제9회 서울환경영화제 지구의 아이들 부문
영화제 홈페이지 www.gffis.org
상영시간 75분
사담 하나. 요즘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도 시골의 추억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름이면 며칠씩 시골에서 보냈다.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깼다. 툇마루에 요강이 있었는데, 밖에 나가보니 먼발치 산등성이 대나무밭에 작은 횃불 무리가 능선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횃불이라고 치기엔 하얀색의 작은 불이었다. 나중에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도깨비불 행렬이라고 했다. 새벽에 시끌벅적하게 북치고 장구치며 부어라 마셔라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건 도깨비 잔치라고 들었다. 기억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한참 지나 어른이 된 후 형과 이야기를 하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아마 상상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게다. 별로 가득한 밤하늘도 기억한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이었으니. 지난해 취재 때문에 내몽골을 갔는데, 어린 시절 봤던 밤하늘을 기대했다. 거기서도 꽤 멋진 밤하늘을 봤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것 역시 판타지가 만들어낸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애니메이션 영화 <위대한 곰>의 주인공 어린이 조나단과 소피 남매도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간다. 할아버지 댁은 간이역에 내려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첩첩산골에 있다. 할아버지 집은 ‘위대한 산’이라고 부르는 더 깊은 산기슭에 있다. 산과 할아버지 집 사이에는 작은 파란색 대문이 있다. 대문 넘어서는, 할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기기묘묘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산속이다. 조나단과 티격태격 싸우던 소피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실종. 알고 보니 소피는 산속에 사는 ‘거대한 곰’을 따라간 것이다. 이 곰이 얼마나 거대하냐면, 곰의 등엔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자라고 있고, 집채만한 바위도 있다. 소피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곰인형의 이름을 따서 이 곰에게 ‘프리쵸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소피를 찾아 헤매던 오빠 조나단은 커다란 덫으로 굴러 떨어진다. 이 덫을 만든 이는 사냥꾼이다. 오매불망 사냥꾼의 목표는 그 커다란 곰을 잡는 것이다. 곰을 목격한 조나단을 내세워 사냥꾼은 프리쵸프를 잡으려 한다.
이야기를 요약하다보니 프리드리히 벡의 애니메이션 작품들 내지는 <주문많은 요리점>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 판타지, 이를테면 <이웃의 토토로>(1988) 같은 이미지다.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토토로에서 ‘메이’가 숲속의 괴물에게 “이름이 뭐야”라고 물어봤을 때 이 괴물이 내는 괴성(토-토-로)으로 이름을 제멋대로 짓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연보에서 또 주제의식이 닮은 작품을 꼽는다면 <원령공주>(1997)를 꼽을 수 있다. 아기자기하게 들어 있는 판타지적 설정을 찾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천둥이 치고 비가 오는 날 밤(동생은 개구리가 그날 밤 폭우를 불렀다고 믿는다), 오빠는 그 ‘위대한 산’에 사는 무서운 곰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사람들이 살지 않은 건, 그 곰이 모두 잡아먹었기 때문…이라며 겁을 준다. 소피와 조나단이 숲속에서 겪은 조난이나 사건들은 영화의 도입부부터 주어진 단서로부터 유추가 가능한데, 어쩌면 이것은 필자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소피 또는 조나단이 공유하는 꿈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생각이나 분석을 하기 전에 영화는, 재미있다. 그리고 교훈적이다. 할리우드나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전혀 다른 분위기와 결을 갖고 있는 덴마크 만화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나 아쉬운 것은 꽤 괜찮은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5월 9일부터 열리는 제9회 서울 환경영화제의 ‘지구의 아이들’이라는 섹션에 출품되어 있는 작품이다. 쉽지 않은 기회인 만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영화제가 열리는 CGV용산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정의 달을 맞아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놀이공원보단 더 오래 남는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