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드러나긴 했지만, 대학생 전세임대는 당첨된 학생들에게는 좋은 혜택이다. 문제는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학교 4학년 김은진씨(23)는 올해 초 한 달 정도를 남의 집에 얹혀 살아야 했다. 새 집을 금방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김씨의 고향은 충남 천안이다. 전공이 신학인 그는 2학년 때까지는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학사에서 생활했다. 하숙이나 자취에 비해 비용은 적게 들었지만,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학사이다보니 새벽기도나 통금시간 때문에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았다. 그 뒤 자취를 시작해 집을 두 번 옮겼다.
친구와 함께 원룸에서 살던 그에게 올해 1월 말 꽤 좋은 조건으로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정부의 대학생 전세 임대지원 대상자로 당첨된 것이다.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은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국 대학생 9000명에게 최대 7000만원(수도권 7000만원·광역시 5000만원·도 4000만원)의 전세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학생과 집주인 사이에 계약이 성립되면 정부에서 전세금을 집주인의 계좌로 넣어준다. 학생은 전세금에 대한 이자(월 7~17만원)를 부담한다. LH는 지난 1월 9일부터 13일 사이에 신청을 받았는데, 모두 2만2031명이 신청해 2.4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당첨자는 1월 20일에 발표됐다.
입주 가능한 전셋집 찾는 건 개인의 몫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은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12·7 부동산 대책에 포함돼 있었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학생들이 개인정보와 입주 희망지역을 LH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곧바로 공인중개사 홈페이지와 연동돼 집주인과 학생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입주 가능한 전셋집을 찾는 건 오롯이 김씨 개인의 몫이었다. 그는 당첨 직후 전에 살던 집을 나왔지만 신촌 일대를 30여 군데 돌아다닌 끝에 한 달여 만에 집을 구했다. 대학가 주변 주택의 현실과 맞지 않는 조건이 문제였다. 전세임대는 말 그대로 전세에 한정해 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은 대부분 일정액의 보증금에 월세를 내는 형태다. 신축건물이 아닌 한 대학가 주변에는 전세 물량이 많지 않다. 또한 대상 주택의 총가격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80% 이하여야 지원 대상이 되는데, 신축건물인 경우에는 부채비율이 높다. 정부는 문제점이 지적됨에 따라 2월 초에 부채비율을 80%에서 90%로 완화했다.
조건에 맞는 집을 구했다 하더라도 LH에 등록해 승인을 받는 데 걸리는 하루이틀 사이에 다른 세입자가 나타나 곧바로 계약을 맺으면 허사가 된다. 이미 대학가 주변 물량은 포화상태라 집주인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전세임대 지원 대상인 학생에게 우선적으로 전세를 내줄 이유는 적다. 김은진씨는 “지금 사는 집은 내가 방을 보고 나서 다른 사람이 찾아왔는데,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LH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7000만원까지 지원하는 까닭에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올리는 부작용이 나타나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대학가 주변 학생들은 이 제도 시행 이후 전셋값이 1000만원 이상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3월 2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울에서 전세임대 지원 계약 1건당 지원한 보증금은 평균 6062만원이었다. 전세임대 지원 대상이 아닌 집들의 수도권 평균은 5600만원이었다.
대학생 전세임대 지원은 김은진씨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5월 주거문제에 대한 고민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민달팽이 유니온’을 결성해 대학생들의 주거권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껍데기가 없는 민달팽이는 집 없는 청년들에 대한 은유다. 지난해 11월 그는 청와대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 참석해 대학생을 상대로 한 보증금 대출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그 제안을 정부가 받아들여 전세임대 지원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그러나 애초 김씨의 제안은 전세와 월세를 포함해 주거형태에 따라 보증금을 지원해주자는 것이었지만, 정부 정책은 전세로만 한정됐다.
저렴한 기숙사·주거공급 확대 필요
시행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드러나긴 했지만, 대학생 전세임대는 당첨된 학생들에게는 좋은 혜택이다. 문제는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서울 YMCA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수도권에서 자취 및 하숙을 하는 대학생 52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세로 거주하는 학생들은 9%에 불과했다. 월세가 36%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학교 기숙사(21%), 고시원과 하숙(각기 15%)이었다. 응답자의 38%는 학기가 바뀔 때마다 집값(월세, 하숙비, 기숙사비)이 인상된 경험을 했다. 이 중 35%는 집값 인상을 피해 더 싼 곳이나 통학거리가 더 먼 곳으로 이사했다. 응답자들은 집값 인상 요인으로 물가상승(42%)과 대학가 집주인들의 담합(39%)을 꼽았다.
서울YMCA는 보고서를 통해 “대학의 저렴한 기숙사 확충과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대학생 주거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은진씨는 “대학생 전세임대는 학생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방식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며 “최선의 방안은 기숙사를 확대하는 것이다. 대학이 학생들의 주거문제도 학교 책임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 학생 중 타 지역 출신 학생들은 2011년 기준으로 15만6202명(38%)이지만,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2만6992명(17.3%)에 불과하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모임 ‘하우징 롸잇’(주거권)에 참여하고 있는 성승현씨(29·토지자유연구소 연구원)는 대학생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3대 정책으로 “기숙사 수용률을 2배로 높이고 비용은 절반으로 완화, 대학생 전용 임대차계약서 도입, 대학 내 학생 주거복지 전담부서 설치”를 꼽았다. 그러나 주거문제는 대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씨는 “대학 졸업 후 미취업 상태인 사람들과 졸업 후 결혼을 하지 않은 25~35세 청년들도 주거 취약층이다. 이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