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정희 대표는 지난 16일 민주통합당의 김희철 예비후보와 관악을 지역의 야권연대 후보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본인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여론조사는 지역구 주민에게 자동응답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 대표의 보좌진이 “이미 집계가 끝난 연령대 외에 다른 연령대를 선택해 응답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 결과 조작을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표는 재경선을 치르겠다고 대응했다. 그러나 야권연대 후보로 통진당 후보들이 결정된 다른 지역구에서도 탈락한 민주당 후보들이 여론조사를 문제삼고 나서자 결국 이 대표는 버티기를 포기했다. 야권연대가 전면적인 파탄 위기에 직면하고서야 후보 사퇴라는 용단을 내린 것이다.

이정희
이 대표의 사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야권연대를 살렸다’는 반응과 ‘진작 하지’라는 반응.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사퇴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갑작스런 이 대표의 발표가 더 긍정적인 반응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22일 밤 이 대표와 긴급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이 대표의 사퇴 발표 후 트위터에 “이정희 대표가 야권연대를 구했습니다. 스스로를 희생한 아름다운 결단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칭송했다. 반면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정희의 아름다운 결단이라… 아름답다고 하기엔 그녀의 구질했던 ‘200명 변명’이 거슬린다”는 글을 올려 이 대표의 이미지가 적잖은 상처를 입었음을 드러냈다.
야권연대 파기로까지 이어질 뻔한 위기는 이 대표의 사퇴로 서둘러 봉합됐지만, 문제의 발단이 된 여론조사 조작에 대한 사실 확인과 평가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 사태가 한 지역구만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상당수의 야권 경선지역으로 번진 것도 여론조사 과정에 대한 불신이 각 당 내부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기고가로 활동해왔던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는 “서로 당세도 다르고 사정도 다른 정당들이 단일화를 위한 방식을 일괄적으로 만들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는 동안 비판의 화살은 이 대표의 배후로 지목된 ‘경기동부연합’이란 한 정파로 향했다. 몇몇 언론에서 ‘경기동부’ 정파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패권적으로 당을 장악해왔으며 이 대표의 사퇴를 막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자 이 대표와 ‘경기동부’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가 사퇴한 직후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운동권 내에서만 떠돌던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의 이름이 밖으로 드러난 게 가장 큰 타격이었을 것”이라고 썼다. 이 대표의 뒤를 이어 관악을에 출마하는 이상규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역시 ‘경기동부’에 속한 인물이란 주장이 나와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