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섭권이 주어졌으니 잘 활용하기 위해 전문성을 키워야죠.”
지난 3월 20일 서울 영등포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만난 청년유니온 2기 위원장 한지혜씨(28)의 말이다. 청년유니온은 한국 최초의 세대별 노조를 선언하며 2010년 3월 출범했다.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한 청년노동자와 취업준비생이 청년유니온의 조합원들이다. 그러나 2년 동안 법적으로는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취업준비생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4차례나 노조설립신고필증이 반려된 끝에 얼마 전 길이 열렸다. 지난 14일 서울시가 절차와 자격을 검토한 결과 하자가 없다며 청년유니온에 노조설립신고필증을 교부한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이로써 2년 만에 합법노조로 인정받게 됐다.

청년유니온 2기 위원장 한지혜씨 | 이상훈 기자
합법화는 올해 초 2기 위원장으로 선출된 한 위원장에게는 청년유니온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다. 합법노조로 인정받으면서 얻은 교섭권이라는 수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라는 고민이다. “구직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거잖아요. 구직자를 대변하는 차원에서 서울시나 경총 등을 상대로 채용조건에 관련된 교섭을 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내용이 여기에 포함될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이력서에 불필요하게 기재하는 사항들을 줄여나갈 생각입니다. 너무나 당연시되는 토익점수 같은 스펙도 좀 더 현실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아직 완전하진 않다. 이번의 합법화는 조합원이 58명(구직자 22명, 직장인 36명)인 서울지역 청년유니온에만 한정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구직자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전국적인 합법노조로 가는 길은 아직 막혀 있다.
설립 2년 만에 합법노조로 인정
청년유니온은 합법화 이전에도 몇몇 뚜렷한 성과를 냈다. 청년유니온은 출범 자체부터 청년고용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운 세대별 노조라는 점에서 청년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실제적인 성과도 냈다.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와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지급’이 그것이다.
2010년 12월 아르바이트로 피자배달원으로 일하다 배달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대학생의 사망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후 청년유니온은 집회와 해당 피자업체에 대한 공개편지 발송 등을 통해 피자업계의 ‘30분 배달제’ 문제를 공론화했다. 해당 피자업체는 결국 지난 2월 ‘30분 배달제 폐지’를 약속했고, 다른 피자업체들도 폐지 의사를 밝혔다.
‘30분 배달제’ 폐지가 언론 보도를 통해 촉발된 것이라면, 지난해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지급’은 문제 제기부터 수당 지급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모두 청년유니온이 주도했다.
합법화를 통해 교섭권을 확보했지만 기업을 상대로 실질적인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 청년유니온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수 있는 근거도 이 같은 기존의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섭할 수 있는 기업이 있겠느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일단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받았으니 저희가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확보한 거죠. 주휴수당 폐지 때는 교섭권 없는 상황에서 수당 지급을 요구했지만 해당 업체가 요구를 들어줬죠. 그때 우리가 교섭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그래서 더더욱 합법노조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물론 당장 높은 교섭력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작은 성과들을 바탕으로 교섭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섭력 확보가 장기과제라면 당면한 과제는 최저임금 현실화와 포괄임금산정제 폐지다. 청년유니온은 양대노총과 시민·사회단체 30개로 이뤄진 최저임금연대에 참가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19~39세 청년노동자들이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의 50%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포괄임금산정제는 기본임금에 모든 수당을 미리 집어넣어 임금을 산정하는 제도로, 기업들이 수당지급 없이 노동자들에게 초과근로와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총선 앞두고 정치참여 문제로 논란
총선을 앞두고 청년유니온은 정치참여를 둘러싸고 한 차례 소란을 겪었다. 김영경 1기 위원장이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경선에 나간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정당들의 2030 청년비례대표 경선에 대해 저희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어요. 정당에서 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너희가 와서 해보라는 식으로 들렸거든요. 그럼에도 우리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자는 차원에서 김영경 전 위원장이 출마를 통한 정치참여를 고민했는데, 내부적인 논의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가 나오면서 내부에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김영경 전 위원장은 결국 출마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청년유니온은 대신 총선 전에 청년후보들과 정책협약식을 맺을 계획이다.
한 위원장은 청년유니온 창립 멤버다. 그러나 정작 청년유니온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했다. 졸업 전에 이미 학자금 및 생활비로 대출받은 돈이 2600여만원에 달해 매달 60여만원씩 돈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청년유니온이 왜 필요한지 물었다. “청년문제를 콕 집어서 문제라고 하고 고민한 사람들이 그 이전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유니온을 만든다고 했을 때 크게 공감하고 참여했던 거죠. 앞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더 재미있고 즐겁게 활동하고 싶습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