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연대 후보단일화 경선조사에 활용된 ARS 조사방식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있어왔던 터라 사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는데 결국 ARS(automatic response system) 조사가 이제 막 링 위에 오른 야권연대를 휘청거리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두 가지 조사방식이 병행되었다. 반은 임의번호걸기(RDD) 전화면접 방식이었고, 반은 기존 전화번호부를 사용하는 ARS 방식이었다. 모든 조사방식들이 한계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ARS는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을 확보하는 데 큰 한계를 지니고 있는 방식이다. 요즘처럼 홍보성 스팸전화가 많아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에 마지막 문항까지 친절히 응답하는 사람들을 과연 ‘보통’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조사대상들을 고르게 표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ARS 조사는 일반 전화조사처럼 조사원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해 미리 일정하게 녹음된 내용으로 응답자에게 질문을 하고, 응답자가 전화기의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자료가 입력되고 분석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한 번호만 누르거나 성·연령을 속이는 등의 불성실 응답을 제어하기가 불가능하다.
또 응답률이 평소 시기에는 4~5%에 불과한데 선거 시기에는 2% 내외로 더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해당 지역 전체 전화번호 리스트를 소진하고도 원래 목표했던 샘플 수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바로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사 일시가 알려진 경우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참여율이 높아질 수 있고, 전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전국 조사처럼 지역이 광범위하고 조사대상이 커지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역구 조사처럼 소규모 지역에서 실시되는 경우에는 의도적 개입 여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불성실한 답변 제어하기 힘들어
물론 ARS 조사가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다. 정상적으로 조사될 경우 신속성과 경제성을 가장 잘 충족시킨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략적인 대중의 의견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기도 하다. 또 모든 조사에서 발생하는 표본오차 이외에 조사과정 중 조사원의 주관이나 역량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는 비표본오차가 준다는 장점도 있다. 또 정치에 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참여하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선거 등에서는 실제 선거 결과 예측성이 높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조사원에게 직접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한 응답을 유도하는 면도 없지 않다.
가격이 낮고 빠르게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선거캠프에서 1000만원이 넘는 전화조사 대신에 200만~300만원의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지역 판세를 알아보기 위해 한계를 알면서도 사용을 외면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비싼 커피를 마시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자판기 커피라도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다시 강조하지만 정확성을 조금이라도 희생시켜서는 안 되는 후보 선출과 관련한 조사에서는 ARS 방식이 맞지 않는 것이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줄자로 잰 격이기 때문이다. 크게는 여론조사에 대해 과잉의존하는 최근 정치권의 흐름에 변화가 필요하다.
윤희웅<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