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의 진실, 뒤늦은 양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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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수언론의 논설위원은 양심선언을 임기 말이면 늘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비유했다. ‘살아있는 권력’이 시들해져 가는 때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전화통화에서 “이전부터 늘 생각해왔지만 쉽게 마음을 먹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정치인이 아닌데 시기에 대해 정치적인 고려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언론에서 먼저 접촉해오기에 가족에게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내가 아는 사건의 진상을 밝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원치는 않지만 ‘배신자’ 딱지를 붙이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므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진실된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장진수

장진수

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로운 논란의 중심이 된 장 전 주무관은 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사찰한 사실이 밝혀지자 상관인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의 지시를 받고 사무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4개에 디가우징(자력을 이용해 컴퓨터 자료를 복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작업을 하는 등 증거를 없앤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장 전 주무관은 “최종석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검찰이 먼저 요구하고 있다’며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검찰이 압수해가지 않은 실질적인 업무분장표에는 윤리지원관실의 업무 중 이비(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보고하는 업무가 있었다”고 말해 지난번 검찰 기소를 비켜갔던 최 전 행정관(현재 주미 한국대사관 주재관)과 현재 행적이 묘연한 이 전 비서관이 사건에 깊이 연루돼 있는 정황을 폭로했다. 또 장 전 주무관은 “검찰이 처음부터 증거인멸을 확인하려고 계획하고 압수수색을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해 검찰 수사가 ‘짜고 치는’ 식으로 진행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수사는 최 전 행정관 선에서 막혀 윗선과 배후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언이 새롭게 나옴에 따라 검찰은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을 재수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미 검찰 수사가 다 끝난 사안”이라며 “청와대가 가타부타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장 전 주무관은 총리실 소속이지만 정해진 보직이 없는 대기발령 상태다. 양심선언 이후 외압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아직까지 별다른 외압은 받지 않았고 다만 후배 공무원들이 조심스레 응원의 말을 건넬 때가 있다”고 답했다. 대법원에 상고한 뒤 재판 일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 전 주무관은 “내가 겪은 일을 고백한 자료를 대법원에 제출할 것이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2심에서 다시 재판할 기회가 생긴다면 진실에 입각해서 다투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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