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되던 시절에도 인문학에서 즐거움을 찾던 이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인문학이 필요없다는 것은 인문학이 쓸모없다는 것과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쓸모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의 쓸모없음이라는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부산의 인디고서원은 이런 인문학의 문제에 가장 잘 부합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인디고>라는 저널은 지금 한국에서 발간되는 어떤 인문학 관련 학술지보다도 훌륭하고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당대의 지식인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기고를 직접 받아서 게재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문제를 세계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슬라보예 지젝 지음·인디고 연구소 편
궁리·1만8000원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인디고서원에서 출판 프로젝트를 맡은 이들이 출판한 최초의 책이자 국내 최초의 지젝 인터뷰집이다. 특정한 사상가의 인터뷰집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항을 중심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인터뷰를 나눈 것을 묶어낸 경우는 드물었다.
이 책을 그렇고 그런 인터뷰집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금까지 한국 인문학이 매몰된 ‘훈고학’을 벗어나고자 하는 실천적인 고민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한국의 제도인문학이 주석과 자구해석만을 강조하면서 위기의 담론만을 재생산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자기의 고민과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서문에서 인터뷰어들은 “민주주의가 안착되었다고 믿었던 순간 곧바로 민주주의 퇴행을 경험한 불행한 한국의 현실이 음각되어 있으며, 신자유주의 속에서 신음하는 세계 시민들의 고통이 양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하게 우리 문제에 대한 답을 지젝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젝의 이론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지젝에 대한 학술적 궁금증을 풀어줄 만큼 자세한 안내와 해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지젝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충실하게 물어봤다는 점에서 인문학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읽어볼 만하다. 한 마디로 어렵지 않다.
지젝은 오늘날 가장 가난한 사람들로 일하는 계층이 아니라 실업자나 배제된 자들을 지목한다.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가 곧 노동자 계급이라는 관념을 여전히 갖는 전통적인 좌파에 대해 지젝은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이런 전통적 관점으로 인해 빚어지는 오류로 지젝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예로 든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이론에 따르면 차베스는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를 활용해서 미국을 압박하는 방식이 상당히 혁명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석유를 팔고, 그로부터 돈을 버는 것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면서 지젝은 “노동착취 등의 오래된 관념에 대해 재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차베스 혁명이 가져온 이익은 궁극적으로 석유를 파는 행위에서 나왔다는 이 아이러니를 고찰하지 않고 이를 찬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가치이론보다도 배제의 이론이 지금 현재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라는 지적은 상당히 흥미롭다. 여기에서 배제의 문제는 “오래된 노동자-자본가 사이의 계급 구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문제”이다. 이런 지젝의 주장은 한국의 상황에서 파격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것이다.
국가는 부유해지는데, 국민은 굶주리는 현상이 이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이를 통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배제된 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의 출현이다.
외국의 석학을 모셔다가 한국의 문제를 물어보던 이상한 상황을 더 이상 목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책은 훌륭하게 증명한다. 우리의 목소리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택광<경희대 교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