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연락 끊고 사표 낸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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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검사는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혀 사실상 검사생활이 끝났다.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이 박 검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앞으로 이분한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목해 달라.”

결국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말처럼 박은정 검사의 검사생활은 끝날 듯하다. 박 검사는 2일 검찰 내부게시판에 “오늘 검찰을 떠나고자 한다”는 글을 올린 뒤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대검찰청은 박 검사의 사표에 대해 “현재로서는 박 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사유가 없으므로 사직서를 반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은정

박은정

김 총수는 2월 28일 업데이트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 봉주 7회에서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을 제기한 주진우 시사IN 기자에 대해 지난주 서울 중앙지검 공안2부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한 인천지검 부천지청 박은정 검사가 자신이 그 청탁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주 기자는 지난해 10월 ‘나꼼수’ 25회에서 김 판사가 2005년 서부지법에 재직할 당시 부인인 나경원 새누리당 전 의원을 ‘친일파’라고 비판한 네티즌을 기소하라고 청탁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나 전 의원 측은 주 기자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고발했고, 현재 서울 중앙지검 공안2부의 지휘로 서울지방경찰청이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박 검사는 경북 구미 출신으로 이화여대 법학과를 나와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9기로, 2000년 수원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이후 국가청소년위원회와 보건복지부 파견근무를 거쳐 현재 인천지검 부천지청에서 근무하기까지 줄곧 여성·아동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지난해에는 여성 연예인의 성폭력 사건을 맡은 것을 계기로 시민단체의 ‘여성인권보장 디딤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꼼수’의 폭로 여파가 번지자 박 검사는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라며 누리꾼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박 검사 지지 트윗을 올리는 한편 나 전 의원과 김 판사, 검찰을 비판하고 있다. 대검찰청 자유발언대는 박 검사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글로 뒤덮였다. 박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서기호 전 판사는 2일 통합진보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사의를 표한 박은정 검사의 소식을 듣고 입당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역풍에 휩싸인 나 전 의원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김 판사는 기소 시점부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미국 유학 중이어서 기소 여부에 영향을 미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전화나 연락을 취한 적 없느냐’는 질문에는 “기소청탁한 적 없다”는 답만 반복했다.

박 검사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사실관계에 대해 입을 닫은 상태지만,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한 사정당국 관계자가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김모씨에 대한 고발사건 기록을 조속히 검토해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김 판사의 기소청탁이 있었음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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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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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