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질명소 둘러보기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한반도 자연사 기행><br />조홍섭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한반도 자연사 기행>
조홍섭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우리는 ‘자연사(natural history)’라는 단어에 제법 친숙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필자가 20대였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사’라는 단어를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물론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후반기에 고교 교과과정에 ‘지학(地學)’이 새로운 학과로 지정되어서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빈곤 탈출이 제1의 과제였던 시절에 일반 국민에게 ‘자연사’라는 단어는 일종의 사치이고 한가로운 이야기였다.

필자가 ‘자연사’와 만나게 된 것은 미국 유학 중이었다. 워싱턴 DC에 소재한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고 박물관이란 것이 문화재만 보관하는 시설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1990년대에 미국 방문 중에 남서부 캐년 지대를 돌아보았는데, 그곳의 지질학적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책자를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자연사에 대해선 쉽게 참조할 만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점에서 한겨레신문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가 펴낸 이 책은 일반인이 우리나라의 자연사를 알 수 있게 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등산 중에 무심히 밟는 바위는 물론이고 우리 발에 차여 굴러다니는 돌 한 개에도 대단한 역사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한다면 자연사에 대해선 그 역시 ‘비전문가’다. 지난 20여년 세월 동안 환경문제를 파고든 언론인에게도 자연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환경과 생태를 다루어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한반도의 자연사를 탐구했다.

책은 서울시민들의 등산코스인 북한산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땀 흘려 올라가는 북한산은 깊은 땅속에 있던 마그마가 지표로 상승해서 생겨난 것이라니 등산화에 밟히는 바위 하나 하나가 어찌 경이롭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지층이 고생대 이후의 것인 일본과 달리 한반도는 가장 오랜 암석부터 최근의 암석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지질학자에겐 ‘축복의 땅’이라고 한다. 여름에 눈썰미 있는 피서객들이 찾는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김삿갓 계곡에서 15억년 세월을 훌쩍 건너뛴 두 지층이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는 김삿갓 계곡을 방문한 일본의 지질학자들은 그 지질학적 보고(寶庫)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고 하니 더위를 식히기 위해 그곳을 찾는 우리는 얼마나 호강을 한 셈인가.

저자는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한다. 갈라파고스에는 진화 과정과 격리된 동식물이 많듯이 울릉도에는 울릉도에만 있는 식물종자가 많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울릉도는 종(種)의 형태가 분화하는 ‘향상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울릉도가 그런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장소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저자는 한반도가 화산과 지진이 많았던 지대였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와 백두산뿐 아니라 한탄강도 용암이 흘러 만들어낸 강이라고 하니 화산은 한반도의 어머니가 아닌가 한다.

저자는 책의 3부에서 한반도 지질 명소 아홉 곳을 들고 있는데, 백령도, 부산 다대포, 서울 불암산, 대구 비슬산, 인천 굴업도, 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대, 동강 백룡동굴, 진안 마이산, 그리고 변산 격포리가 그러하다. 격렬한 습곡작용, 공룡시대 퇴적층 등 각각 독특한 지질학적 작용을 통해 한반도의 지질명소로 들 만하다는 것이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사용하려 했던 서해의 작은 섬 굴업도가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이라는 대목에 와선 할 말을 잠시 잊게 된다. 이런 곳을 전부 가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어느 한 곳도 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곳을 가본 사람 중 자신이 가본 곳이 지질학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알았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필자 역시 그런 점에서 ‘무지(無知)’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후면 필자는 현업에서 은퇴하게 될 것인데, 그러면 이 책을 들고 한반도를 차근차근 탐방하고자 한다.

이상돈<중앙대 교수·법학>

북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