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은 희망버스 기획단의 주역이다. 이들이 옥살이를 마치고 보석 허가를 받아 ‘제한적 자유’의 몸이 됐다. 5차에 걸친 희망버스는 85호 크레인에서 싸우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살려냈다. “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라며 두 사람은 제2, 제3의 희망버스 운동을 호소하고 나섰다.
5차에 걸친 희망버스는 85호 크레인에서 300일 넘게 싸우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52)을 살려냈다. 한진중공업 사측도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지난해 11월 18일의 일이다. 같은 날 희망버스 기획단의 주역인 송경동 시인(46)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44)은 오랜 수배생활을 마치고 옥살이에 들어갔다.
‘85’일에서 하루 부족한 84일이 지난 2월 9일, 부산지법은 두 사람에 대한 보석을 허가했다. 보증금 2000만원을 납입하고 주거지 거주 등의 조건도 덧붙였다. 이들의 자유는 ‘제한적 자유’인 셈이다.

송경동 시인(왼쪽)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이 희망버스의 상징인 깔깔깔 스카프를 들고 서 있다. | 정지윤 기자
석방되던 날 송 시인은 부산구치소 앞에서 “희망버스 시즌2는 쌍용자동차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15일은 쌍용자동차 투쟁이 시작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 21명이 사망했지만, 사측은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복직시키지 않았다.
지난 16일, 송 시인과 정 실장은 서울 정동의 민주노총 건물을 찾았다. 두 사람은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희망버스 기획단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만나 제2, 제3의 희망버스 운동에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을 직접 만났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희망뚜벅이 행사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송경동(이하 ‘송’)_ 석방되던 날에는 부산에 있었고, 금요일에 바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토요일에는 1박2일로 쌍용자동차 희망텐트를 다녀왔습니다. 법원에서 저희를 풀어주면서 거주지에 머물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쌍용차 투쟁에 가지 말라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정진우(이하 ‘정’)_정확히 말하자면 이틀까지는 다른 곳을 가도 괜찮습니다. 법원에서 3일 이상 거주지를 벗어나면 허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옥살이를 하면서 건강이 나빠지진 않았나요.
송_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환자였습니다. 2008년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에 참가했다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습니다. 구속된 이후 경찰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음주에 병원에 가서 정확히 진단을 받고, 길면 한 달 정도 병원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정 실장 모두 목디스크 증상도 발견됐습니다.
정_ 저는 감옥에 갇힌 건 이번이 처음인데, 세 달 가까이 좁은 독방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오니까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300일간 크레인 농성을 마친 뒤 땅멀미를 하셨다는데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석방된 다음날 당에서 하는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라는 제의가 있었는데, 어지럼증 때문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건강검진을 조만간 받으러 갈 생각입니다.
송_ 그래도 석 달간 금연은 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두 분 모두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지만 옥살이에 익숙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적응하기가 힘들진 않았나요.
정_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이 상황에 쉽게 복종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방에 갇혀 끼니 때마다 문 아래로 870원짜리 식사가 들어옵니다. 어느 순간 이런 기계적인 과정을 통해 통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사식이 아닌 구치소에서 넣어주는 밥은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몸무게가 10㎏ 정도는 빠졌습니다.
송_ 제가 있던 공간은 누우면 딱 한 뼘 정도 공간이 남는 독방이었습니다. 문이 하나가 있고 창가에 변기가 하나 있는 구조였습니다. 사고를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난방도 잘 되지 않아 추웠습니다. 사실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몰랐습니다. 길게 옥살이를 할 줄 알고 감방에 도배를 하려고 했습니다. 휴식시간에 다른 방을 보는데 도배가 되어 있어 새집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걸 보고 도배용 편지지와 풀을 엄청 사뒀는데, 시작도 못해보고 석방이 됐습니다.

2월 16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서울 정동 민주노총을 방문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실장을 반기고 있다. | 김문석 기자
희망을 노래하다가 좁은 독방에 갇히게 됐는데 풀이 죽지는 않았나요.
송_ 희망버스에 오르신 여러분들이 계셔서 기가 죽지는 않았습니다. 희망버스 시민들이 매주 우리가 갇힌 부산구치소를 찾아와 우리 둘의 석방을 촉구하는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변기 뒤에 나 있는 창에 귀를 바싹 대면 작게나마 문화제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만큼 옥살이에 힘이 되어준 것은 없었고,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정_ 마침 우리가 감옥에 있는 기간에 크리스마스, 연말, 설날이 끼어서인지 많은 분들이 편지도 보내주시고 사식도 보내주셨습니다. 경기도에 사신다는 30대 주부가 보내준 편지가 기억에 납니다. 자신이 희망버스에 한 번도 참가를 하진 못했지만, 여러분과 뜻을 같이한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옥에 갇히기 전부터 몇 달간 수배생활을 한 것으로 압니다.
송_ 수배기간 중에 특히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배생활을 하던 지난해 9월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신 이소선 여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꼭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장례식을 치르는 그 바쁜 와중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씨가 우리가 머무르던 곳에 여러 차례 찾아와 찜닭도 사주고 좋은 말씀 많이 하고 갔습니다.
정_ 전태삼씨에게 ‘어머님 산소도 못가보고 죄송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희에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바로 어머님의 산소다’라시며 여러 차례 격려해 주었습니다. 전태삼씨가 마석 모란공원에서 이소선 어머님의 49재를 마치고 남은 소주 2병을 송경동·정진우에게 먹여야 한다며 직접 들고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송_ 그분뿐만 아니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에게 꼬막, 더덕, 고기 등을 보내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수배자가 된 몇 달 동안 노숙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지만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만 한정된 사건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연대의식을 만들어준 측면도 있습니다.
정_ 한진중공업 투쟁이나 희망버스가 독립적으로 조명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희망버스에 참가한 시민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송 시인의 책 <꿈꾸는 자 잡혀간다>에 나온 것처럼 희망버스만큼 사회적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억압받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희망버스도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석방된 이후 송 시인은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에 희망버스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진중공업 투쟁의 상징적 존재인 김진숙 지도위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희망버스 운동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고 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요.
송_ 지금의 한국 사회는 900만 비정규직 시대, 생계형 자살이 만연한 시대에 들어서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투쟁 때는 85호 크레인이라는 절박한 망루가 상징처럼 서서 힘든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을 만들어냈습니다. 한진중공업 투쟁이 끝나고 방향을 쌍용차로 틀자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이 했는데, 사실 6개월 정도 희망버스 투쟁을 하면서 다들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법적 제재를 받는 등 공권력이 거세게 탄압을 하면서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좀 망설이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_ 한진중공업 투쟁 때는 85호 크레인이라는 상징적인 공간과 트위터를 통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통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투쟁 당사자와 일반 시민들 간에 동질감이 만들어졌습니다. 2009년 쌍용차 투쟁 때 노동운동 진영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모았지만, 이 투쟁에 참여하려는 운동진영 바깥의 사람들과 심정적인 접점을 만들어주는 게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송_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을 만나서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쌍용차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상당히 긴 기간 크레인에서 외롭게 싸웠고, 희망버스에 처음부터 수만명이 몰린 것은 아닙니다. 21명의 죽음과 정리해고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생긴다면 쌍용차에도 한진중 때처럼 많은 시민들이 투쟁에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희망텐트가 쌍용차 공장 앞에 섰습니다. 희망뚜벅이는 쌍용차뿐만 아니라 1500일간 투쟁하고 있는 재능교육 농성장, 인간다운 노동을 요구했던 유성기업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두 분이 보기에는 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통해 새로운 체제, 새로운 사회운영 원리가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야 할 것 없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_ 지금 정치권은 앞다퉈 분배의 정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새누리당도 2015년까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제도권 정당의 변신은 일반 시민들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이 내세우는 말이 최소한의 진정성을 가지려면 2015년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할 게 아니라 지금의 문제에 우선 나서야 합니다. 쌍용차, 재능교육,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모든 노동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말해야 합니다.
송_ 정권교체가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15년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경제권력에 의한 종속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동안 정권을 맡았던 새누리당, 민주당으로부터 근본적인 반성과 패러다임 전환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8년 촛불항쟁, 2011년 희망버스처럼 아래로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운동에 나선 결과입니다. 언론도 그렇고 다들 총선과 대선에 어떤 당이 승리할지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돼야 합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