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에서 2030이 주목받은 것은 2002년 16대 대선 이후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큰 힘을 발휘한 것이 바로 이들이다. 당시 MBC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선거에 참여한 20대의 59%, 30대의 59.3%가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이 연령대에서 34% 수준의 득표율(20대 34.9%, 30대 34.2%)에 그쳤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시민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10년이 지났다. 당시 20대는 30대가 되고 당시 30대는 40대가 됐다. 여기에 당시 10대들이 유권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형성된 것이 현재의 2040 세대동맹이다. 이들 20·30·40을 하나로 묶고 있는 힘은 ‘반MB’ ‘반한나라당’ 정서다.
20·30·40이 한 덩어리로 반한나라당 연합을 구성하고 있긴 하지만, 세대적 공통 경험을 들여다보면 2030세대와 40대는 다르다. 소위 ‘386세대’로 불리는 40대는 1960년대에 출생해 반독재·민주화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이다.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절 대학에 들어간 이들은 입학과 동시에 세미나와 독서, 집회 참여 등을 통해 ‘인식의 충격’이라 불릴 만한 세계관의 전환을 경험했다. 40대의 진보성향에는 계층적 요인보다는 이 같은 20대 시절의 경험이 강하게 작용한다. <진보세대가 지배한다>를 쓴 유창오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은 경제적으로 풍족하면서도 진보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위 ‘강남좌파’의 전형이 386세대에서 나타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다고 본다.
386은 이념, 2030은 생존 위기의식
40대는 사회·경제적으로는 2030보다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의 정치는 엄혹했지만 경제에는 훈풍이 불었다. 40대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대학 진학이 가능했고, 졸업 후에는 정규직으로 취업해 사회생활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세대다.
반면 2030세대는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다. 청소년기부터 사회 진출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지배한 사회·경제적 조건은 사교육, 스펙 경쟁, 높은 등록금, 취업전쟁, 비정규직화 등 ‘고비용 저효율’의 경쟁구조다. 이 때문에 이들을 진보성향으로 만든 것도 이념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지난해 7월 31일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문화제를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정서의 결도 다르다. 40대는 대학 시절 민주화 투쟁의 깃발 아래 공동체의 가치 지향을 개인의 취향보다 우선하는 가치관을 습득했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1980년대를 ‘진정성의 시대’로 규정한다.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에 대한 헌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부채의식,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민감한 자의식, 그 결과 나타나는 비장함의 정서 등이 1980년대를 살아낸 386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깔려 있다. 김 교수는 “386의 진정성은 주로 정치적 차원의 진정성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더 이상 진정성의 멘탈리티(심성구조)를 갖고 사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그러나 어떤 국면에서는 그런 멘탈리티가 살아나기도 하는데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요즘이 그런 시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적으로 다소 경직돼 있었던 1980년대와는 달리 문화적 다양성과 소비문화가 만개한 1990년대 초반 이후 20대를 보낸 2030세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지난해 11월 18일자 프레시안 기고에서 “욕망의 실현이라는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1990년대 초·중반의 신세대와 외환위기의 충격 및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탈정치화와 재정치화 성향이 공존하는 2000년대의 88만원 세대를 모두 관통하는 에토스는 다름 아닌 개인주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개인주의에는 386세대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이 사적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향해서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것을 ‘연대적 개인주의’라고 표현한다. 2008년 이후 촛불집회, 반값 등록금 집회, 희망버스 등 자발적 개인들의 집합적 연대가 만들어낸 사회적 사건들이 그 근거다.
‘테크놀러주아지’ 정체성 공유
이처럼 세대적 공통 경험과 정서의 결, 사회·경제적 조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2040세대동맹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는 “2030이 386에 대해 일정한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386이 점점 2030세대와 동일한 성향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말했다. 2030세대와 386이 모두 ‘테크놀러주아지’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러주아지’는 테크놀로지(기술)와 부르주아지의 합성어다. 여기서 기술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소셜미디어(SNS) 등 정보통신 기술을 가리킨다. 정통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으로 정의되는데, 이 교수는 이를 차용해 정보통신 기기를 소유하고 자유롭게 활용하는 2040세대를 테크놀러주아지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들은 노동과 소비, 정치참여에서 50대 이상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특성을 보인다. 이들의 노동과 소비에는 놀이의 특성이 드러난다. 정치참여도 촛불문화제, 동영상 패러디, 인증샷 놀이 등에서 보이듯 유희적 특성이 가미된 문화적 방식으로 한다. 그러나 이들 앞에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지닌 기득권 질서의 벽이 놓여 있다. 이 교수는 이것을 기득권이 고착화하고 세습된다는 의미에서 ‘봉건적 신분질서’라고 부르는데, 이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한 2040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될 수는 없다.
이 교수는 “정보통신 기술로 무장한 2040세대의 수평적 네트워크는 정치와 문화에서는 인맥·학맥·보수언론으로 이뤄진 낡은 질서를 깨뜨려가고 있다. 그러나 2040 네트워크가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재벌이 장악하고 있는 경제영역”이라며 “차기 정부와 차차기 정부에서 경제민주화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2040이 탈정치화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