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장 복지국가’ 쿠바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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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급변했다. ‘모두 부자되세요’라고 외치던 낙관주의는 종적을 감추고, 99%를 가난에 빠뜨린 1%의 책임을 거론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부의 양극화와 부패한 정부, 위기에 놓인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서서히 대중의 지지를 얻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요시다 타로 지음·송제훈 옮김· 서해문집·1만5000원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요시다 타로 지음·송제훈 옮김· 서해문집·1만5000원

세계체제론을 주창한 사회학자 임마누엘 월러스타인은 현재의 상황을 지칭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체제에 대해 최초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제기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은 ‘대안’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역사적 경험이 잘 말해주듯이, 대중들이 박차고 나섰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최초의 행동’에 지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현실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이념적 전망이다. 지금까지 본다면, 크게 두 가지로 이 전망을 요약할 수 있는데, 엉망진창이 된 자본주의를 고쳐서 다시 제대로 작동하게 하자는 주장과 자본주의 자체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체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들이다.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에 따라서 사상적 입장은 나뉘게 될 것이다.

요시다 타로가 쓴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는 후자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저자다. 전작에 비해 더 강력한 어조로 요시다 타로는 쿠바를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사회’로 제시하고 있다. “아니 쿠바가 어떻게 대안사회가 될 수 있지”라는 의문을 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쿠바는 북한처럼 사회주의를 추진하다가 경제를 말아먹은 나라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시다 타로가 전하는 쿠바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유일하게 지구상에서 지속가능한 나라로 지목한 곳이 쿠바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마이클 무어가 만든 <식코>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쿠바는 무상의료의 천국으로 묘사된다.

미국에 비한다면 존재감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에서 무상의료를 실시한다는 사실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주목한 그 다큐멘터리에서 쿠바는 미스터리한 국가로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쿠바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나라이고, 혁명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에게 쿠바는 멋진 훈남 체 게바라의 ‘고향’이다. 그러나 쿠바는 이런 낭만적 이미지를 넘어선 현실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 책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해버린 상황에서도 어떻게 의연하게 쿠바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증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단순한 쿠바 탐방기에 그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좀 더 심각하게 쿠바를 모델로 삼아서 ‘반성장 복지국가’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쿠바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는 하나의 사례이자, 동시에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일무이한 미래의 유산이다. 이 책의 저자는 주먹구구나 우연으로 쿠바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양한 통계를 동원해서 제시한다. 에너지 절약과 식량 생산을 위한 주도면밀한 정부의 노력이 지금 쿠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요지다. 한국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에 등장하는 오리앨비스가 “돈보다도 삶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북리뷰]‘반성장 복지국가’ 쿠바를 보라

요시다 타로의 주장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의 경우도 <녹색평론> 같은 매체가 꾸준하게 반성장 패러다임을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책이 제시하는 쿠바의 모델을 사회적 대안의 하나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또한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하는 다른 하나는 이런 쿠바를 이루어낸 밑거름이 바로 ‘주민참여’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적 소통이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문제도 궁극적으로 일상 정치의 영역을 어떻게 구성해내는지에 달려 있다는 말인데, 이것이 무엇보다도 ‘문화’의 문제라고 저자는 제시하고 있다. 

이택광<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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