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했다. 12월 30일 오전, 김문수 도지사는 남양주소방서를 찾았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측의 대응도 빨랐다. “오늘 오전 도지사님이 방문한 거요? 웹하드에 자료 올려놨습니다.” 40장의 사진과 1기가의 동영상 파일이 올라 있었다. 사진을 봤다. 그런데 이번 사건 주인공인 소방서 직원들의 얼굴이 어째 편해 보이지 않는다. 동영상을 확인해봤다. 가운데 앉은 김문수 지사가 말을 꺼낸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는 거여. 그런데 문제는 …. 실수하면 한 사람이 죽잖아요.” 당사자들 대답은 없다. 옆에 앉아 있던 선임으로 보이는 소방관이 맞장구를 친다.

김문수 지사가 119 도지사 발언 논란을 빚은 이틀 뒤 남양주소방서를 방문해 사건 당사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12월 28일.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간 ‘김문수 도지사 남양주소방서 119 전화사건’의 전말은 인터넷을 들여다본 분은 다 아실 것이라고 믿는다. 간단히 요약하면, 암환자 긴급 후송시스템을 알아보려고 119로 전화를 건 지사께서 도지사라는 것을 무려 여덟 차례나 밝혔는데도 응대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전. ‘누군가’ 그 남양주소방서 직원들과 김문수 도지사의 통화음성파일을 인터넷에 올렸다. 누리꾼의 분노는 폭발했다.
녹취된 음성파일에서 김 지사는 암환자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가 되풀이한 것은 “나 도지산데…”, “도지사 김문수요”라는 말뿐이었다. 소방서 직원들은 “그런데, 용건이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요컨대 긴급전화로 전화를 걸어 관등성명을 따지고 있는 김 지사의 태도가 옳았느냐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나 도시자인데” 패러디가 폭발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도지사 응대를 제대로 못한 직원 둘을 포천·가평으로 전보조치했다. “절대 문책성 인사가 아닙니다.” 12월 29일 기자와 통화를 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홍보과 직원은 강변했다. 확인해보니 김 지사와 먼저 통화를 한 오모 소방위의 집은 구리다. 구리에서 포천, 멀다.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이게 문책성 인사가 아니다? 홍보과 직원은 반문했다.
“기자님도 아셔야 할 게 경기도가 워낙 넓습니다. 만약에 한강 남쪽에 사는데 북쪽으로 인사발령이 난다면 그게 문책성 인사인가요?” 그렇다 치자. 음성파일에 따르면 윤모 소방교는 관등성명을 댔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인사조치가 되었을까. 그 경우도 김 지사가 물어보기 전에 먼저 관등성명을 대지 않았으니 “표준운영절차를 어겼다”는 설명이다. 홍보팀이 보내준 ‘표준운영절차’ 문건에서 두 소방관이 어긴 것은 다음 항목이다. ‘1.03 표준운영절차(지침) 1. 수보자는 자신의 소속과 성명을 먼저 밝히고 친절하게 통화한다.’ 그러니까 “소방서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잘못한 것이라는 것이다. 홍보과에 따르면 상황실 근무자는 전화를 받자마자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남양주소방서 소방교 홍길동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긴급을 요하는 전화에서 저렇게 응대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하나 더. 음성파일은 어떻게 인터넷에 유포되게 되었을까. 음성파일은 경기도 관내 34개 소방서 책임자에게 감사실에서 ‘교육용’으로 메일로 발송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실 쪽은 음성파일이 인터넷에 퍼진 뒤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책임자에게 물었다. 물의를 빚으니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냐고. “전혀 아닙니다. 어느정도 시일이 지났으니, 굳이 보관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삭제하라고 한 것이고.” 이쯤이면 ‘눈 가리고 아웅’이다. 여전히 “어쨌든 관등성명을 안 댄 것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냐”는 도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