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나치즘이 횡행하던 당시 유럽에서는 레지스탕스가 활약했다. 프랑스 작가 로제 팔리고의 <장미와 에델바이스>는 10대들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복원한다. 제목에 쓰인 ‘장미’와 ‘에델바이스’는 당시 활동하던 10대 레지스탕스 조직인 ‘백장미단’과 ‘에델바이스 해적단’에서 따왔다.
해적단은 1933년 히틀러청년단에 대항해 결성됐다. 당시 독일에서는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체포와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히틀러청년단의 구호가 “유대인 적들과 영원토록 전쟁을!”이었던 반면, 에델바이스 해적단의 슬로건은 “히틀러청년단과 영원토록 전쟁을!”이었다. 금속과 천으로 만든 에델바이스 장식을 옷깃과 양말에 단 단원들은 히틀러청년단 단원들과의 육탄전도 불사했다. 12~18세 사이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해적단원들은 화물열차를 공격해 얻은 물자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잉게 숄의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이 소설을 영화화한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로 알려진 백장미단은 해적단과는 구성이 달랐다. 해적단이 주로 빈곤계층이었던 데 비해 백장미단은 일종의 지식인 그룹이었다. 소설 주인공 소피 숄의 오빠인 한스 숄은 본래 히틀러청년단 단원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청년단 단장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금서로 지정하자 환상에서 벗어났다. 백장미단은 체제와 전쟁의 진실을 알리는 전단을 뿌렸다. 전단의 문구는 비장하다. “독재자 일당의 비열한 독재정치에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끌려가는 것보다 문명화된 민족에게 안 어울리는 일은 없다. 정직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정부가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독일인들에게는 이 야만적인 자들을 처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스와 소피는 1943년 2월 대학에서 전단을 돌리다 수위의 고발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둘은 체포된 지 6일 만에 처형됐다. 두 사람만이 아니라 조직원들 전원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당시 10대 레지스탕스 운동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독일군 병사를 저격한다거나 폭탄을 던지는 격렬한 형태도 있었지만 지나가는 독일 병사를 슬쩍 밀거나 흑판에 낙서를 한다든지 하는 장난스러운 형태도 있었다.
10대 레지스탕스가 독일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러시아, 폴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등에서도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10대 레지스탕스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10대 레지스탕스는 거의 잊혀졌다. ‘게으른 암코양이들’ ‘복면 40’ ‘스윙 키드’ ‘재즈광’ ‘붉은 선구자’ ‘마르소파’ 등 저자가 발굴해낸 수많은 이름들은 공식적인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잊혀졌을 뿐만 아니라 왜곡되기도 했다. 전후 독일에서 해적단은 오랫동안 무정부주의자나 훌리건 정도로 간주됐다. 소설은 물론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소피 숄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저자는 자료를 찾기 위해 당시 일기장, 편지, 유인물, 노래 등을 뒤지고 자신이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다는 기억조차 희미한 당사자들의 증언을 채집해 책을 완성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