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열심히 일하면 잘 살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던 때가 있었다. ‘서울의 달’을 올려다보며 ‘파랑새는 있다’고 되뇌며 하루하루 희망을 갖고 살던 시절 말이다.
그러나 국가도 개인도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대한민국 고속성장의 신화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 심화로 대체되었다. 이러면서 신분 상승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은 옅어져 왔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11년 사회조사에서 이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생 동안 노력을 하는 경우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에 대해 ‘낮다’고 생각하는 가구주의 비율이 무려 58.7%였다. ‘높다’고 보는 비율은 28.8%에 그쳤다. 가구주 10명 중 6명은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다는 기대 없이 대부분의 가장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2년 사이에 급격히 강화되었다. 일생 동안 열심히 일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오를 가능성이 ‘낮다’는 비관적 응답은 지난 2009년 동일한 조사에 비해 10%포인트나 늘어났다. 2009년 조사에서는 지위 상승의 가능성이 ‘높다’ 35.7%, ‘낮다’ 48.1%였다. 2년 새 가구주의 10%가량이 추가적으로 본인 세대에서의 신분 상승의 기대를 내려놓은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없다는 사실을 커가면서 알아차리게 되는 것처럼 희망과 설렘은 사라지고 냉혹한 현실의 칼바람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신분상승 가능성 낮다” 58.7%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스스로를 상층이라고 하는 가구주들은 그나마 지위 상승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이 많지만, 중층과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가구주들은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가구주 본인이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 비율은 이 조사에서 고작 1.9%에 불과했는데, 이 1.9%의 상층집단에서만 신분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응답이 더 많은 것이다. 자신을 중층(52.8%)과 하층(45.3%)이라고 보는 가구주들의 비율은 98.1%였는데 이 계층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높아지기 어렵다는 인식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반면, 중층과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만 양극화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인식도 양극화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이러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가정보다는 일을 더 중시하고 있다. 일과 가정생활 중 ‘일을 우선시한다’가 54.5%로, ‘일과 가정생활 둘 다 비슷하다’ 34.0%, ‘가정생활이 우선시한다’ 11.5%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온 것이다.
일생 동안 열심히 일을 해도 사회·경제적 지위는 나아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정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대한민국 가장들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윤희웅<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