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영화평론가의 잡식성 독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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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섬세한 영화평으로 상당수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책 중독자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을 사는 데 중독돼 있다. 그는 지금까지 1만권이 넘는 책을 사들였다. 그에게 책은 읽고 또 읽는 대상이기 이전에 사고 또 사는 대상이다. 그래서 그는 “책에 관한 한 저는 쇼핑 중독자”라고 말한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 <밤은 책이다>는 그의 여덟 번째 책이자 영화와 무관한 첫 책이다.

<밤은 책이다><br>이동진 지음·예담·1만5000원

<밤은 책이다>
이동진 지음·예담·1만5000원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책읽기가 갖고 있는 특징을 요약한다. 먼저 그는 ‘허영투성이’ 독서가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들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다음으로 그는 ‘고집불통’ 독서가다. 능률적인 독서법을 놔두고 한꺼번에 10권을 읽어나가는 자신만의 산만한 독서법을 고수한다.

그가 이 책에 풀어놓은 도서목록을 보면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인용한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판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실감난다. 독서를 먹성에 비유한다면, 그의 독서 취향은 한 마디로 잡식성이다. 책에 실린 짤막한 독서 에세이들은 그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의 바다에 뛰어들어 건져낸 상념의 흔적들이다. 그 흔적들을 담은 글은 조선일보 영화담당 기자 시절 그를 스타기자로 만들어준 ‘시네마 레터’ 코너에서처럼 경어체로 이뤄져 있는데, 그는 이처럼 경어체를 사용한 서간문 형태가 자신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데 가장 맞춤한 형식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의 문체는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는 데서보다는 미묘한 감성의 결을 포착하는 데서 빛을 발한다. 예컨대 그는 과학교양서를 읽으면서도 ‘사랑의 교집합과 여집합’이라는 주제를 끌어낸다. 책에서 그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 중 하나인 <꿈꾸는 뇌의 비밀>은 꿈에 대한 실험과 이론을 통해 꿈꾸는 인간의 특성을 묘사한 과학교양서다. 그는 뇌가 시각정보를 선택적으로만 인식한다는 사실에 관한 문단을 인용한 후 “사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세상에서 살기에,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접선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타인들이고 일종의 섬인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과학에서 출발해 인간 존재에 대한 서정적 감상으로 나아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는 방식도 비슷하다. 호킹의 책에서 그의 감성을 건드린 부분은 별의 생성과 소멸 과정에 대한 묘사다. 잘 알려진 대로 별이 빛나는 것은 우주의 암흑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별빛은 별이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별빛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읽으며 소멸을 명상하는 그는 “떨어져서 보면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휘황함이 실은 격렬한 에너지 소모와 붕괴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완벽한 결합보다는 적당한 거리에, 에너지의 폭발보다는 소멸에 이끌리는 그의 감성은 무엇인가 결핍된 것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영국 문필가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집>에 대한 그의 감상은 이렇다. “(책에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꿈보다 연민’이란 글귀를 함께 적어드리곤 합니다. 연민보다 더 소중한 감정을 저는 알지 못하니까요.”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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