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의 사건 청탁을 들어주고 벤츠 승용차와 법인카드, 샤넬 백 등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ㄱ검사(경향신문 11월 26·28일자 1면 보도)의 사표를 수리한 배경을 놓고 의문이 일고 있다. 현행 중앙인사위원회 규정은 비위 공직자의 사표를 수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검찰이 해당 검사의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의혹이 증폭되자 뒤늦게 “벤츠 검사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경향신문 11월 29일자, ‘벤츠 검사’ 덮기 의혹)
법조계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서로 덮고, 봐주고, 감싸준다. 검찰, 법원, 변호사들이 서로 가족애를 발휘한다. 다른 언론 보도를 보면, 대검 감찰본부는 벤츠 검사의 동료 검사들에게 “벤츠를 타고 다니느냐”고 탐문했으나 “아니다”라는 답변을 듣자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믿음’, 가족을 지탱하는 뿌리다.

벤츠 검사를 풍자한 김용민의 그림마당(11월 29일자)
지난해 사건 청탁 대가로 승용차를 받은 ‘그랜저 검사’ 때도 그랬다. 검찰은 처음엔 무혐의 처리했다가 나중에 비난여론이 일자 기소했다. 향응·성 접대 등 ‘스폰서 검사’ 의혹 때도 검찰 진상조사단은 ‘제식구 감싸기’ 논란에 휩싸였다. 조사단은 ‘접대 리스트’에 거론된 현직 검사들을 소환조사하기 전에 조사 방향을 미리 알려줄 수 있는 ‘가(假)조사’ 계획을 밝혔다. 전화로 미리 방어논리를 세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계획을 바꿨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통합검색 사이트 ‘카인즈’에 ‘검찰 봐주기’를 검색하면, 2660건이 나온다. ‘검찰 감싸기’는 1286건, ‘검찰 덮기’는 428건이다. 10개 언론사가 1990년 이후 다룬 기사 숫자다. 검찰 가족끼리 주로 봐주면서, 재벌·정치인도 자주 봐줬다. 대한민국 가족의 외연은 넓다. 검사와 재벌이 함께 엮이면? 수사는커녕 조사도 안 한다.
대검찰청이 26일 ‘봐주기 수사’ 의혹이 일었던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비자금 사건 전임 수사팀에 대해 감찰조사를 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중략) 이번 사건의 핵심 의혹은 임 회장과 사돈뻘 되는 홍석조 현 광주고검장이 인천지검장으로 부임하기 직전 전임 수사팀이 서둘러 임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대검은 이번 사전조사에서 홍 고검장은 물론 당시 인천지검장이었던 이종백 현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해 전혀 조사를 하지 않았다.(경향신문 2005년 7월 27일자, ‘대상 수사팀’ 감찰 않기로…대검, 봐주기 수사 이어 제식구 감싸기 의혹)
홍석조 고검장? 지금 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씨의 동생이다.
노회찬 전 의원은 2007년 ‘안기부 X파일’을 인용해 삼성그룹에서 떡값을 받았다는 전·현직 검사 실명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첫 공판에서 노 전 의원은 “검찰은 오히려 고위직 검찰 간부의 이름이 녹취록에 등장한다며 당사자에게 알려주는 등 녹취록 내용을 제식구 감싸기에 탈법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건 때는 직·간접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지만, 검사가 관여되면 언론 통제에 들어간다. 2005년 서울 동부지검은 검사 아들의 시험답안지를 교사가 대리 작성해준 사건을 수사하면서 개별 취재를 통제했다. 기자단 대표를 통해 하루 두 차례씩 담당 차장검사와 전화통화만 허용했다.

스폰서 검사 때 특검과 검찰 진상규명위 수사 결과 비교표. 웬만해선 ‘수사 안함’이다.
검·판사들끼리도 끈적하다. 웬만해선 문제삼지 않는다. 1998년 의정부지원 근무 판사 37명 전원이 인사조치되는 사건이 있었다. 의정부지원 판사 출신 변호사의 브로커 고용 혐의가 적발되면서 판사들 금품 수수 의혹도 드러났다. 하지만….
의정부지원 판사 금품수수 의혹사건은 법원이나 검찰이 이미 그 내용을 파악했으면서도 서로 쉬쉬하며 은폐·축소에 급급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중략) 법원 관계자도 “당시 3명의 판사를 조사한 결과 1명이 돈을 받은 사실은 확인됐으나 직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본인이 해명한 데다 액수도 미미해 문제를 삼지 않았다”며 “나머지 판사에 대해서는 직접 조사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내용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경향신문 1998년 2월 18일자, 지난해 10월 이미 조사 시작/‘별일 아니네’ 어물쩍 넘겨/대검 12월 내사자료 받고도 ‘쉬쉬’/파장 우려 조기 수사 종결 의혹)

1998년 2월 19일 참여연대 회원들이 서울지방법원에서 의정부지원 판사 금품수수 의혹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변호사들도 가족이다. 2002년 법원은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원치 않는 유방 확대수술을 강요한 혐의 등 범죄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 30대 변호사에 대해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법무부·검찰·법원 공무원들은 치외법권을 누리는 듯하다. 2002년 6월 경기 부천시 신앙촌 재개발사업 비리의혹 때 시행업체 경리 관계자가 검·경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다는 진술을 했지만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2006년엔 검찰 수사기밀이 해당 피의자에게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 검찰이 자체 감찰에 나섰지만 5개월 동안 최초 유출자가 누구인지 찾지 못해 ‘제식구 감싸기’ 의혹이 일었다.
이런 자상함을 보일 때도 있다. 2000년 12월 당시 서울지검 동부지청은 사건 관련자로부터 1500만원을 받은 정모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는데, 구속영장 청구서 직업란은 빈칸으로 남겨뒀다. 정씨는 서울가정법원 직원이었다.
법조의 가족애는 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2008년 10월 친박연대 노철래 의원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법무부와 검찰의 직무 관련 공무원 범죄는 2006년 1507건에서 2007년 2701건으로 79%나 급증했다. 하지만 2006년 기소율은 1.5%, 2007년은 0.85%였다. 다른 정부 부처 기소율은 5.5%, 경찰은 4.2%였다. 법조 공무원들의 범죄에는 애틋하고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는 걸까.
검찰은 자기정화할 수 있을까. 다음은 벤츠 검사 문제가 불거진 뒤 나온 경향신문 사설이다.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에는 특권의식과 집단이기주의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검사들의 비리가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뜻이다.(중략) 검찰 비리의혹을 근절하기 위해 검찰의 자기 정화 노력을 기다리기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검찰에 대한 높은 사법적·도덕적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일벌백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경향신문 2011년 11월 28일자,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 다음은 무엇인가)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