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며 시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미 FTA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인터넷에서 뜨겁다. 참여정부 말기에도 이 문제로 많은 학자들이 저술을 했고, 여러 가지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시민들이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진 적은 없는 것 같다. 고무적인 일이다.

서성일 기자
그런 가운데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견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편향이 발견된다. 하나는 참여정부의 한·미 FTA와 이명박 정권의 한·미 FTA는 크게 다르다고 믿는 흐름이다. 이 의견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근거는 유시민이나 이정희처럼 두 FTA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 그들의 정파적 이해에 부합할 거라고 기대되는 정치인들조차도 막상 “두 FTA가 크게 다른가요?”란 질문을 받았을 때 “크게 다른 것이 없다”고 답하는 정황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두 FTA에 대해 가지는 다른 태도는 어떤 정책효과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오늘날 널리 통용되는 신념, 유시민이 정리한 바 “노무현은 의를 추구했지만, 이명박은 이를 추구한다”를 따르는 것이다. 이명박은 제 이익을 위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불사할 위인이지만, 노무현은 그럴 리가 없으므로 노무현의 FTA는 그와는 다를 거라는 그런 믿음이다.
나는 이렇게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 vs ‘대의를 따르는 정치인’의 구도로 우리 정치평론이 흘러가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리라고 생각한다. 지도자께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은 과거 독재자들의 어법이었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이들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없는가? 이명박은 과연 FTA가 체결되면 재벌기업들에게 성과급이라도 지급받기 때문에 저런 일을 하는 것인가?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그의 고집은 그가 나름의 방식으로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자일지도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지 않는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이 사익을 추구한다 비난하기 전에 공익의 관점에서 그 의견의 효과들을 견주어보는 자세를 취할 때에 참여정부의 한·미 FTA와 이명박 정권의 한·미 FTA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편 두 FTA를 지도자의 ‘진심’으로 비교하고 ‘국익’을 훼손하는 FTA를 비판하는 담론에 거리를 두려는 모종의 진보적 입장이 있다. 그 중의 한 조류는 “FTA는 근본적으로 가진 자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나쁘며, 설령 제3세계 국가들과 해서 한국이 이득을 보더라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한국의 못 가진 자들에겐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현재 추진되는 FTA 조약의 각론을 고려할 때 이런 견해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종의 ‘공리’가 되어, “그러므로 가능한 모든 FTA를 반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로 나아가는 것이 그렇게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유무역은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는 주류경제학의 공리를 그대로 뒤집은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공리가 매번 진실은 아닐지라도, 실제로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 설령 자유무역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와 손해를 보는 이가 존재할지라도 국가정책의 영역에서 이득과 손실을 중재하여 피해를 보는 이 없이 국부를 증진시킬 방법도 고민해볼 수 있다.
자본가들만 이득을 본다고 조소하지만, 그런 상황 역시 노동계급에 불리한 일이 아니다. 만일 자본가 계급이 더 큰 이득을 얻는다면 노동계급이 투쟁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양보의 몫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을 송두리째 무시한 FTA 반대론은 한·미 FTA가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맹목만큼이나 맹목적인 것 같다.
한윤형<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