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애플이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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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 화제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 제품을 창조해 인류의 삶의 질을 바꿔놓은 그의 업적에 세계인들은 열광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인들의 관심을 더욱 많이 받는 이유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전 때문이다. 세계 휴대폰시장의 최강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 소송전은 미국, 유럽, 호주, 일본 등 10여개국에서 진행 중이다. 양사의 소송비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하니 국제로펌들이 때 아닌 특수를 누리는 듯하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되기 시작한 10월 24일 홍콩의 한 서점에 잡스의 얼굴로 표지를 장식한 책들이 쌓여 있다. / AP연합뉴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되기 시작한 10월 24일 홍콩의 한 서점에 잡스의 얼굴로 표지를 장식한 책들이 쌓여 있다. / AP연합뉴스

솔직히 필자는 이공계 출신도 아니고, 전자분야엔 문외한이다. 삼성과 애플 중 누가 옳은지, 누가 누구의 기술을 훔쳤는지 판단할 입장이 아니다. 속내를 말한다면 한국 기업인 삼성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팔은 안으로 굽으니’ 말이다. 아마 대다수 국민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한데, 이 소송전을 보면 풀리지 않는 몇 가지 궁금증이 있다. 우선 어느 곳을 찾아봐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애플(정확하게는 스티브 잡스)의 창조물이라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부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외관상 삼성과 애플 제품이 비슷해 보이는 건 필자의 나쁜 시력 탓일까.

또 하나, 한때 세계 휴대폰시장을 주도했던 노키아나 모토롤라와 같은 회사들은 경영위기에 처했음에도 ‘애플 따라하기’에 나서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다. 차라리 삼성도 자신들의 주장처럼 애플과 분명한 기술적 차이가 있다면 전혀 다른 독창적 디자인의 제품을 먼저 출시해 ‘삼성열풍’을 만들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 이후 연평균 10조원이 넘는 순익을 남기고, 이 중 수조원을 기술개발비로 투자했다. 순익이나 기술개발비는 애플을 훨씬 능가하는 규모다. 도대체 그 많은 이익은 어디에 쌓아 두었으며, 천문학적인 기술개발비는 어디에 썼을까. 

더욱 궁금한 것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삼성에서 생산하는 부품이 대량으로 공급된다는 점이다. 필자의 식견이 짧은지는 모르지만, 애플이 삼성이 만드는 휴대폰에 부품을 공급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거꾸로 애플과 삼성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도대체 뭐가뭔지 통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보며 왜 한국에는 삼성과 같은 재벌은 생겨날 수 있어도 애플과 같은 혁신적인 기업이 탄생할 수 없는지를 느낀 건 필자뿐일까. 

최근 기술개발 하나로 성공을 꿈꿔왔던 벤처기업들이 거액의 몸값을 앞세워 인력채용에 나선 대기업들의 공세에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재산인 벤처기업으로선 청천벽력일 것이다.

재벌닷컴이 조사한 결과 지난 2000년 코스닥시장에 상장되어 있던 벤처기업 중 40%가량이 사라졌다. 창업자의 비리로 문닫은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핵심기술과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간판을 내렸다. 지금도 잘 나가는 벤처기업 창업자들은 언제 있을지 모를 거대 자본세력의 적대적 인수·합병 우려로 전전긍긍하는 모양이다. 끝내 대기업에 회사를 판 유명 벤처기업 창업자는 “돈도 없지, 판매망은 막혀 있지, 기술인력은 빠져나가지… 항우장사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습니다”라며 한탄했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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