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 5일 창립 50주년 행사를 가졌다. 전경련은 반세기 동안 경제발전을 이끈 한국 재벌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큰 기여를 했다.
비록 전경련이 타의적 탄생배경과 정경유착 통로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한국 경제발전에 끼친 공적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50주년 행사에 대통령까지 참석해 생일을 축하해주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10월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창립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전경련 제공
전경련의 반세기 자취는 한국 재벌의 역사다. 전경련 회장단의 순서는 재벌의 순위였고, 전경련 회장이라는 직함은 한국 사회에서 권위와 명예를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진보정권이 출범한 1990년대 후반부터 전경련은 그 빛을 잃었다. ‘전경련 해체론’까지 불거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과장된 해석인지는 모르지만, 전경련의 위기는 한국 재벌의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이를 ‘정치적 이념에 짓밟힌 것’이라고 말한다. 진보정권이 ‘보수의 상징’인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전경련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해석인 것이다.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경련이 시대적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게 위상 추락의 더 큰 이유가 아닌가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전경련의 구성원인 재벌들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게 그 원인이다. 사회는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재벌들은 이를 준조세나 뜯기기 정도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생색내기 기부나 어색한 미소로 하청업체와 상생협약을 말하는 재벌들에게서 대다수 국민들은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전경련 회장단의 면면을 보면 창업 1세는 거의 없고, 대부분 기업을 물려받은 창업 2~3세들이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기업을 상속받았기에 사회적 책임에 관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재벌들이 등 떠밀려 설립하는 이런저런 이름의 각종 사회재단도 대부분 창업세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창업 2세들이 설립한 재단은 별로 없다. 홍수가 나거나 천재지변이 생기면 재벌들이 자의반타의반으로 앞다퉈 내놓았던 성금 문화도 요즘은 많이 시들해졌다. 최근 몇년 사이에 재벌들의 몸집은 엄청나게 불어났음에도 항상 ‘위기경영’ 아니면 ‘비상경영’이다. 어떤 면에서는 선대 때보다 더 야박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러니 재벌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인들 옛날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재벌 총수는 사업에 방해가 됐다고 전경련 자체를 부정하고 있고, 어떤 총수는 건강이나 바쁘다는 이유로 전경련을 외면한다.
변화된 시대에 전경련과 재벌이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공동체의식’이다. 전경련 스스로 잘못된 재벌을 비판하고, 청년들을 위한 취업창구를 만들고, 재벌로부터 기부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앞장선다면 어떨까. 하늘의 명을 알 나이가 된 전경련에게 필요한 것은 ‘나라(국민)가 있어야 재벌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아닐까 한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