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벌닷컴이 삼성그룹의 전문경영인 출신 인사가 강남에 2000억원대 고층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을 공개하자 재계에서 많은 뒷말이 오갔다. 주인공이 ‘삼성의 2인자’로 불렸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이다보니 그럴 만도 했다.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 박재찬 기자
이 사실이 화제가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오너가 아닌 월급쟁이인 전문경영인 출신이 어떻게 그처럼 많은 재산을 모았을까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회사 규정을 어기지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솔직히 이 고문이 재산을 모은 경위는 재벌닷컴이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다만, 그가 2000년대 초반에 삼성전자 스톡옵션 19만여주를 받은 점과 삼성 측의 얘기처럼 연봉이 100억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도 “삼성그룹(특히 삼성전자)에서 부회장이나 사장을 지내고 나면 500억원대 재산가는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의 빌딩을 소유한 시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그는 삼성그룹의 전략기획실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회사 밖에 별도의 회사를 차려 이 빌딩을 매입(정확하게는 신축했다)했다. 삼성 측도 이에 대해 “임원이든 사원이든 재직 중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영리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 문제를 두고 불거진 ‘사규 위반 논란’은 사기업인 삼성 내부에서 결론지을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단순히 화젯거리로만 치부하기보다 대기업 전문경영인이 가져야 할 ‘도덕적 기준’을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재벌에 몸담고 있는 전문경영인들은 경제계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재벌의 경영을 잘 관찰해보면 표면상 총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만, 총수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전문경영인이다. 전문경영인의 그릇된 판단으로 재벌이 망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모든 책임은 전문경영인이 아닌 총수가 짊어지지만 말이다.
전문경영인들은 경영과 관련해 하청업체 관리나 사업계획 등을 실무에서 결정하고 집행하는 위치에 있다. 현장에서 어떻게 사업이 이루어지고 집행되는지는 총수가 모를 뿐 아니라, 별 관심도 없다. 실적만 좋으면 유능한 전문경영인으로 인정받고, 재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 전문경영인이 사리사욕을 채운 사례는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해체된 어느 재벌그룹의 부회장은 재직 시절 회사 밖에 친척 명의로 포장재 납품업체를 차려놓고 재산을 모으다가 감사에서 들통이 나 조용히 옷을 벗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굴지의 재벌그룹에 재직하고 있는 전문경영인들이 회사의 토지 매입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헐값에 미리 땅을 사서 고가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얘기도 나돈다.
회사의 고급 내부정보를 이용해 타인 명의로 개설해둔 증권계좌를 통해 자사주를 사고팔아 돈을 벌었다는 얘기도 있고, 하청업체로부터 정기적으로 거액을 상납받는 전문경영인에 대한 비리 투서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재벌 총수의 도덕성 못지않게 재벌에 몸담고 있는 전문경영인의 도덕성도 엄격하게 감시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