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가 들어서서 무려 90조원대의 ‘부자 감세’가 계속되고 있는 대한민국과는 달리, 다른 나라들은 요즘 ‘큰 부자들’(super rich)의 자발적 증세 요구가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 이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등에서 자발적인 부자 증세 움직임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09년 11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부자감세 철회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이 먼저 부자 증세를 주장한 바 있고, 프랑스에서는 화장품회사 로레알의 릴리안 베탕쿠르 등이 “유럽의 국가부채로 인해 장래가 어두워지는 상황에서 부자들이 특별히 나서서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또 독일에서도 부자들이 “빈곤층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긴축정책이 아닌 부유층에 대한 증세만이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부자 증세를 촉구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참으로 반갑고 놀라운 소식입니다. 조세정의, 부자 증세를 줄기차게 주창해 왔던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를 매우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이런 부자들이 없을까요….” 사적 탐욕엔 능한데, 공적 책무에는 너무나도 둔감한 한국의 ‘큰 부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졸부’나 ‘천민자본주의’라는 부정적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산업재해 사망률 1위에, 출산율은 꼴지를 다투는 국가임에도 재벌·대기업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동참하는 일에는 참으로 소홀합니다.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죽든 말든 어떻게든 돈만 많이 벌면 되고, 가급적이면 세금이나 복지 등의 사회적 책무는 피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 재벌·대기업·강부자들의 전통적인 공통점이라 할 것입니다. 심지어 느닷없이 ‘반값 등록금’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힐난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큰 부자들’은 언제쯤이나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페라리의 몬테체몰로 회장처럼 “나에게 세금을 더 걷어라”고 자청할 수 있게 될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재벌·대기업들은 법인세 인하 요구에 ‘올인’하고 있고, 각종 세제특혜(가령 2009년 기준 2조원 규모에 달한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의 87%가 대기업에 집중)를 누리고 있으며, 나아가 기업 활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순전히 재벌 총수들을 위해 상속·증여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국가는, 민생은, 복지는, 조세정의는 안중에도 없는 무책임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큰 부자들’이 증세를 안 해도 좋으니 제발 탈세라도 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그동안 그들이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도, 곳곳에서 탈세와 범법행위를 저질러왔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는 시대적 흐름, 큰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자는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가는 한국의 재벌·대기업·강부자들의 반사회적인 행태 배경에는 스스로의 탐욕뿐만 아니라 이 정부의 잘못된 철학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자 감세’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현 정권의 기조가 우리나라 ‘큰 부자들’의 반사회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죠.
우리 노동자, 직장인들은 갑근세(甲勤稅)를 원천징수 방식으로 내고 있는데, 우리나라 강부자 계층들도 ‘갑부세(甲富稅)’를 추가로 내면 어떨까요? 실제 이름은 유럽 연대세의 예처럼 ‘사회통합세’ 정도로 붙인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통합력과 조세정의를 매개로 한 사회정의가 더욱 제고될 것입니다. 그들의 부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국가적·사회적 산물인 만큼 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그들의 부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존경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시민사회는 우리나라에도 자발 증세를 요구하는 ‘큰 부자들’이 출현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안진걸<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성공회대 NGO 담당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