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재벌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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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공중파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대형 건설사가 자사 아파트의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을 청약자로 동원한 사실을 고발한 적이 있다. 이 건설사는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다보니 이 건설사로선 청약률이 높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 이 같은 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8월 17일 국회 식경제위원회에서 열린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청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 김문석 기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8월 17일 국회 식경제위원회에서 열린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청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 김문석 기자

문제는 이같은 사실이 드러난 뒤 회사의 반응이었다. 회사의 고위 간부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지 모르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청약률을 높이기 위해 회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직원을 동원한 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전문가들이 결론을 내릴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이 회사 간부의 말처럼 ‘도덕적’인 부분이다. 문제의 대형 건설사는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의 수장이 회장으로 있는 곳이다. 그는 올 초 취임식에서 “국민과 대기업이 가까워지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요즘 정치권에서 재벌 때리기가 한창이다. 보수당이든, 진보당이든 가릴 것 없이 재벌의 행태를 시비하며 주먹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재벌들도 예전과 달리 정면 대응하며 맞받아치고 있다. 국회의 출석 요청도 ‘출장’을 이유로 기피하는 등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사실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재벌마케팅’이라 부른다. 재벌을 공격해 반사적으로 선거에서 서민들의 표를 얻겠다는 속셈이라는 해석인 것이다.

국민들도 그런 정치권의 속내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벌 편에 서주진 않는 듯하다. 이유는 재벌 스스로에게 있다. 앞서 언급한 건설사의 사례처럼 상당수 재벌들은 경제활동에서 도덕성 따위는 안중에 없어 보인다. 기업이란 원래 이익창출이 첫째 덕목이지만, ‘상생경영’과 ‘동반성장’이 경제계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그런 상혼(商魂)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하지만 기업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할 듯하다. 대다수 재벌 총수나 오너들의 경영철학은 ‘실적주의’다. 경영인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얼마나 벌었느냐’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벌었느냐’는 게 더 중요하다. 이쯤 되면 파리 목숨인 임원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최근 범현대가 사람들이 5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해 재단을 설립키로 했다는 내용이 언론을 장식한 적이 있다. 마땅히 칭송받을 일이다. 그런데도 이 기사를 보면서 마음 한편에는 “얼마나 재벌의 사회공헌을 기대하고 있으면, 이토록 큰 화제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민들에게 5000억원은 천문학적인 돈이지만, 솔직히 국내 재벌들 중 마음만 먹으면 그만한 돈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곳은 많다.

국민들의 ‘안티재벌’ 의식을 “못가진 자의 한풀이”쯤으로 하찮게 보는 것은 재벌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존경받는 재벌’이 될 수 있는 길은 있다. 일회용 ‘반짝기부’나 부도덕성이 드러나면 마지못해 내놓는 ‘면죄기부’가 아니라 수십년에 걸친 사회환원이 지속되어야 한다. 여기에 세제혜택 등을 노린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성이 철철 넘치는 동반의식이 담긴다면 재벌이 존경받는 때는 더욱 빨리 올지 모르겠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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