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재정 건전성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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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를 확대하는 발전이 아니라 격차를 줄이는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길어진 생애 주기 전체에 걸쳐 자신의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기말 국정기조로 ‘공생발전’을 제시했다. 공생발전은 이명박 정부가 하반기 들어 제시한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사회 등의 메시지와 상통하는 용어로 ‘저작권자’는 이 대통령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직역하면 생태계적 발전인 ‘Ecosystemic Development’라는 영어 문구를 어떻게 한국어로 표현할지가 고민거리였는데 이 대통령이 공생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공생발전은 임기말 국정기조인 만큼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고 있지만 핵심적으로는 재벌 대기업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기존의 시장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경제 모델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생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 동반성장”이라면서 “대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의 무게가 훨씬 커졌다”며 구체적으로 대기업을 거론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 초과이익공유제 등을 둘러싸고 재계와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 대기업과 수출기업이 잘 되면 성장의 과실이 서민과 중산층으로 흐른다는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때문에 고환율 정책, 부자감세 등을 통해 대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강화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곳간을 열지 않았을 뿐더러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갈수록 심해지자 때늦은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재벌에 대한 압박 수위는 유지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어떠한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생발전을 위해서는 대·중기 동반성장 등 시장의 양극화 해소도 중요하지만 시장에서 탈락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인 복지도 중요하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재정의 투입이 필요한데 이 대통령은 왜 굳이 균형재정을 강조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대통령은 내년 대선 때 야권에서 제기할 ‘복지 지출 확대’를 ‘재전건전성’ 프레임으로 맞서면서 자신이 거둔 ‘재정균형’을 치적으로 홍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재정건전성 의제를 최근 부상하고 있는 복지담론에 맞서는 대항 의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은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에 발생했던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부분의 나라들이 재정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한국은 자산의 임기 5년을 거치면서 재정균형을 달성했다며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실장이 사회공공연구소, 좋은예산센터 등에서 지난 4월 주최한 ‘이명박 정부의 재정건전성 전략과 진보의 대안재정전략’ 토론회에서 발제한 내용을 보면, 한국은 2009년 43조2000억원(GDP 4.1%)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대응과정에서 초래된 결과라고는 하지만 재정균형을 철칙으로 삼아왔던 한국에선 심각한 일로 여겨졌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정부 총지출을 2009년 최종 지출에 비해 대폭 줄였고, 올해부터는 지출증가율을 수입증가율보다 매년 2~3% 포인트씩 낮게 설정하는 재정준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지난해 30조원의 재정적자를 올해 25조원으로 낮추고, 2013년에 재정적자를 6조원, GDP 대비 0.5% 수준으로 관리하는 ‘재정 균형’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축사 중 ‘복지포퓰리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자 한나 라당 홍준표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가 박수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 연합뉴스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축사 중 ‘복지포퓰리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자 한나 라당 홍준표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가 박수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은 ‘세출에선 복지통제, 세입에선 부자감세’로 요약할 수 있다. 올해 정부 총수입은 지난해에 비해 8.1% 증가한 314조4000억원이다. 반면 정부 총지출은 지난해 292조8000억원에서 올해 309조1000억원으로 5.5% 증가한다. 재정수입 증가율에 비해 지출 증가율이 2.6%포인트 낮다. 이 같은 재정지출 통제의 최대 희생양은 복지 분야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금년 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30%, 86조원으로 역대 가장 큰 금액”이라고 홍보했다. 지난해에도 같은 주장을 폈다. 하지만 복지 비중이 역대 최고가 되는 것은 정부 총지출 증가율이 5.5%로 낮기 때문이다. 오 실장은 “분모에 해당하는 정부 총지출 증가율이 낮으니 정부의 정책의지와 무관한 의무지출, 국제기준에서 복지로 간주되지 않는 주택부문 증가분만으로도 복지 비중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에선 재정건전성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복지에 지나치게 많은 재정을 쏟아부어서가 아니라 세수가 지나치게 작기 때문이다. 2008년 현재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5.7%)에 못미치며 전체 30개 회원국 중 20위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복지지출 비중도 한국은 GDP의 7.5%로 OECD 평균(19.8%)에 비해 턱없이 낮은 최하위권이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부자감세로 매년 20조원가량의 세수 감소를 초래해놓고 복지 지출 통제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도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 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우리는 밟아서는 안 된다. 국가 재정이 고갈되면 복지도 지속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부자감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은 이 대통령이 감세 철회를 얘기하기는커녕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심만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럽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재정건전성 프레임에 좋은 외부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들어 복지 확대 정책들이 재정건전성에 타격을 준다는 논리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은 지난 8월 10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미국발 위기를 언급하면서 “야당이 무책임한 무상복지 시리즈를 발표하는데, 그게 오히려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여야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세철회·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냐, 복지지출 통제를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냐’는 논쟁 구도는 내년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양극화가 심한 한국 사회에선 복지 이슈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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