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미국 수출이 늦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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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수입 거부에 대해 미국 측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미국 측에서 삼계탕 수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이 2008년 5월 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학생들이 삼계탕을 먹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학생들이 삼계탕을 먹고 있다. / 연합뉴스

5개월이 흐른 같은 해 11월 3일. 장태평 전 농식품부 장관은 새로 부임한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 대사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삼계탕 대미수출 절차가 조속히 진전될 수 있도록 대사가 관심을 갖고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와 국내 닭고기 업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삼계탕을 미국에 수출하려고 노력해왔다. 물론 모든 미국인을 타깃으로 하는 건 아니다. 250만명이 넘는 재미교포를 포함해 아시아계 미국 거주자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3년 전부터 경상북도와 손잡고 미국으로 삼계탕 수출을 추진해온 마니커F&G 관계자는 “사실 미국 시장 자체가 굉장히 크다고 할 순 없지만 미국 시장에 진출할 경우 향후 주변국가로도 진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까다로운 수입 규정을 통과했다는 것이 다른 국가로 삼계탕을 수출하는 데 이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삼계탕 문제는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례 통상협의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외교통상부는 “한국산 삼계탕의 대미수출 문제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벌써 3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삼계탕 수출이 금년(2008년) 중 이뤄지길 바란다”는 민 전 정책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삼계탕은 여전히 미국의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삼계탕의 대미수출 문이 열리지 않고 있는 까닭은 이른바 ‘동등성 원칙’에 있다. 미국은 삼계탕에 대한 수입 승인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국의 가금육 관련 위생관리제도가 미국 내 제도와 엇비슷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삼계탕은 인삼을 넣어 끓인 뒤 멸균한 만큼 ‘가공식품’이라고 주장해왔다. 한국의 수출용 포장 삼계탕은 섭씨 121도에서 60분간 멸균 압착하기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일정량 이상 닭이 포함되면 축산물’이라며 수입을 거부해왔다. 쉽게 말해 미국의 입장은 삼계탕도 한우와 같은 축산물이고, 한국 축산물은 현재 자국 내로 수입 승인이 안 나고 있기 때문에 삼계탕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미국 농무부 식품안전검역청(FSIS) 점검단은 2008년 한국을 방문해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국내 닭고기 업체들의 작업장을 점검한 뒤 작업장의 위생실태, 질병관리 상태 등 미비점에 대한 보완을 요청했다. FSIS는 이후에도 몇 차례 방한, 현지조사를 벌였지만 아직까지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은 멸균 처리된 삼계탕은 안전하다며 한국산 삼계탕의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농식품부 측은 “삼계탕의 경우 미국 측에서 동등성 여부를 평가 중에 있다”며 “현재 미국 측에서 일부 자료 보완을 요구한 상태로 자료 보완이 완료될 경우 미국 내 행정절차를 통해 최종 승인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마니커, 하림 등 한국 닭고기 업체들이 미국으로 수출하려는 삼계탕 제품은 깡통 등에 담긴 포장 삼계탕”이라며 “완전한 열처리 과정을 거쳐서 멸균을 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내 규정이 삼계탕 수입을 승인할 경우 삼계탕뿐 아니라 단순 열처리된 너겟 등의 제품도 한꺼번에 수입하도록 돼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포괄적인 규정 때문에 미국 측도 쉽게 문을 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내 닭고기 업계는 조만간 삼계탕 수출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그동안 수출이 될 수 있도록 땀을 많이 흘렸다”며 “조만간 수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고 말했다. 마니커F&G 관계자도 “미국 점검단의 지적사항을 대부분 개선했고, 한·미 양국의 통상협의만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올해 안에 개방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르면 올해 안에 삼계탕이 미국으로 수출될 전망’이라는 제목을 단 언론 기사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다시 말해 삼계탕의 대미수출은 한국의 바람대로 굴러가는 통상 이슈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한국에서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청정지역으로 선정되는 절차가 지연될 것이라는 점, 미 식품의약품안전국(FDA)이 인삼제품이 농약에 오염된 것을 적발했던 사례를 빌미로 삼계탕에 들어가는 수삼(ginseng)에 대해 까다로운 농약검사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대미수출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또 “검역조건은 한 나라의 ‘주권사항’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쉽게 건드릴 수가 없다”며 “또 검역 문제는 명분 상으론 먹을거리의 안전성, 국민건강 등이 제시된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국 농민·유통업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삼계탕의 대미수출을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국내 보완대책으로 삼계탕 수출을 꼽고 있다. 정부가 최근 민주당 박주선 의원에게 제출한 ‘FTA 국내 보완대책 현황’을 보면 이행과제 중의 하나로 ‘삼계탕 수출품목으로 육성’이라는 항목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계속 빗장을 걸어둔다면 삼계탕 수출은 제대로 된 보완대책이 될 수 없다.

삼계탕뿐 아니라 국내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도 미국으로 수출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산 쇠고기, 돼지고기의 경우 수출 승인을 하기 위해 미국 측에서 한국을 구제역 청정국으로 인정하는 행정절차를 진행하던 중 지난해 초에 국내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는 바람에 절차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또 닭고기의 경우는 국내에서 뉴캐슬병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지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수입 허용절차 진행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은 한국의 그 어떤 작업장에 대해서도 축산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승인을 하고 있지 않다”며 “한국이 미국에 수출한 축산품은 비피더스 등 발효유와 아이스크림뿐”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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