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누이 강조해왔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은 작금 참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살인적인 수준의 교육비·등록금 고통, 주거비 부담과 전세대란, 가계부채와 이자부담, 통신비 부담, 거기에 물가대란에다가 불안한 일자리와 비정규직·저임금 만연까지.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출산율 꼴찌 국가가 돼버렸고 저출산·양극화·노령화의 3중 위기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전국의 시민사회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국민운동에 나서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복지정책을 실현할 ‘재정’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더 많은 복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6월 2일 황철증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국장이 통신요금 인하안을 발표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그런데 국민의 세금 한 푼 안 쓰고 가계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절묘한 대책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통신비 부담 완화’ 조치입니다. 해마다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독과점 상태의 이동통신 3사가 이동통신요금을 대폭 인하하면 된다는 얘기죠.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는 14만1388원으로 전년(13만3628원)보다 5.8%나 증가했고, 통신비가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09%로 사상 최대를 기록해 식사비(12.38%), 학원비(7.21%) 다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얼마 전 OECD도 한국의 통신비지수(통신비 부담)가 OECD 국가에서 멕시코 다음 2위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통신비 고통과 부담이 국제적으로도 확인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동통신요금의 대폭 인하를 바라는 민심과는 달리,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요금이 비싼 편이 아니라면서 통신사를 비호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지난 6월 2일 방송통신위원회·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 이루어진 ‘통신요금TF’에서 이동통신요금 인하안을 발표했는데, 기본료 1000원 인하안(그것도 SKT만 9월 시행하고 다른 통신사는 아무런 계획이 없는)이라는 터무니없는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고작 1000원 기본요금 인하안을 발표한 ‘통신요금TF’에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논의했는지 우리 국민들이 당연히 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방송통신위원회에 통신요금TF의 구성원과 회의록, 1000원 기본요금 인하안의 근거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방통위는 구성원은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며 공개를 거부했고, 회의록은 작성조차하지 않았으며, 1000원 인하안의 근거는 보도자료로 대체한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특히 ‘통신요금TF’ 구성원들까지 비공개하고, 관련 회의록은 작성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은 국민들에 대한 무책임과 무성의의 극치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됐고 공공 행정행위인 ‘통신요금TF’의 회의록과 이동통신요금 기본료 1000원 인하안 결정 과정에 대해 자료가 있는데도 없다고 했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부도덕한 행위가 될 것이며, 실제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기록물관리법 또는 방통위법 등의 회의록 작성 규정의 취지에 반하고 일반 통념에도 크게 어긋나는 중대한 직무유기라 할 것입니다.(참고 :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5항은 ‘위원회는 위원회 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회의록을 작성·보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
통신요금TF에 참여한 구성원의 실명은 물론 회의록조차 비공개함으로써 인가사업자(SKT)의 기본료만 겨우 1000원 인하안을 발표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 할 것입니다. 결국 방통위가 ‘통신요금 TF’를 온 국민의 이동통신요금 인하 촉구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와 방통위는 자신들이 가진 모든 권한을 동원해 더 많이, 더 빨리 이동통신요금의 대폭 인하에 나서야 할 것이고, 국민들이 알아야 할 자료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공개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동통신요금이 매우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담합이나 폭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담합이나 폭리 여부, 요금거품의 수준‘을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원가 관련 자료 및 통신요금TF 관련 자료는 꼭 공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안진걸<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성공회대 NGO 담당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