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의 거대 우주선(spaceship)이 지구를 향해 오고 있다.” 지난해 말, 인터넷을 달군 뉴스다. 게다가 이 우주선의 지름은 무려 240km나 된다. 뉴스에 따르면 “화성 궤도에 진입할 때쯤이면 천체망원경으로도 확인 가능할 것”이며, “미국 알래스카에 있는 오로라 관측시스템(HAARP)이 이것을 발견했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대사건이다. <인디펜던스데이> 같은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구에 도착하는 시점은 2012년 12월이다. 마야달력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앤드루가 거대 우주선의 증거라고 제시한 천체관측 데이터 사진.
‘거대 우주선’ 보도를 내놓은 곳은 러시아의 <프라우다>지다. 맞다, 냉전시대 크렘린 구중궁궐의 깊은 이야기를 대변하던 그 <프라우다>. 게다가 정보의 출처는 SETI다. 다들 기억하지 않는가. 영화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소속되었던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프로젝트. 바로 그 SETI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와 관련해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국가는 한국이다. 검색설정을 영어로 맞춰놓고 살펴봐도 한국판 영자신문이 상위에 링크된다. 다음으로 나오는 부류는 UFO연구 포럼들. 그런데 <프라우다>의 뉴스카테고리가 마음에 걸린다. ‘과학/미스터리’다. 그러니까 과학을 흉내 낸 유사(pseudo) 과학도 저 매체에서는 과학과 함께 분류하는 모양이다.
SETI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아쉽게도 어디에도 ‘3대의 거대 우주선’ 이야기는 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외국 누리꾼이 SETI의 트위터 ‘@SETIInstitute’ 운영자에게 문의했다. 12월 28일, SETI 트위터 운영자는 다음과 같은 답글을 남겼다. “No, Sorry, This isn‘t real!” 즉 “죄송하게도 SETI가 거대 우주선을 발견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는 답이다. 이틀 뒤 SETI는 다시 트위터를 통해 이번 소동의 전말이 담긴 기사를 소개했다.
디스커버리 뉴스에 따르면 ‘3척의 거대 우주선이 다가온다’는 주장을 최초로 제기한 이는 ‘캐나다의 UFO 연구가’ 앤드루 워즈니라는 양반이다. 그는 글에서 “SETI의 천체물리학자 크레이그 카스노프(Kasnov)가 알려온 바에 따르면…”이라며 위의 <프라우다>가 인용보도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특히 그는 캐나다 천체물리학 연구자들이 만든 ‘스카이맵’의 특정좌표를 제시하며 읽는 사람들에게 ‘직접 검증해보라’고 말한다. 앤드루의 기사는 TV 연속극 ‘X파일’의 그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를 인용하며 끝맺는다. “진실은 저 너머에(The Truth is Out there).”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일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오해가 커진 건, <프라우다>가 이런 저간의 사정을 무시하고 출처없이 인용하면서 비롯됐다. <디스커버리>에 따르면 우주조사자료를 스캔하는 과정에 종종 먼지나 이물질이 끼기도 하는데, 저 (지름 240km로 추정한) 얼룩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심지어 보도의 유일한 ‘소스’였던 ‘천체물리학자 카스노프’ 역시 가공의 인물이다. 대신 이름이 비슷한 카스노프(Kasnoff)는 있는데, 그는 “만약 그 기사가 인용한 카스노프가 혹시 나라면, 완전히 엉터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2012년 12월 중순에 지구에 도착한다”는 2012년 지구 종말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는 부분에서 기사의 진실성을 의심했어야 한다. <프라우다>도 한국의 일부 인터넷저널처럼 포털 노출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저런 기사를 냈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