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으로는 모두 죽는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케인즈가 ‘언젠가는 시장이 균형과 안정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부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을 향해 던졌던 말이다. 오늘은 영역을 좀 달리해서 한국의 다음 대권을 준비하는 여야의 주자들에게 그 말을 들려주고 싶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지지도가 올라 경쟁구도가 될 것이라는 ‘정치적 고전학파’의 인식을 갖고 있는 주자들에게 말이다. 한 사람이 저만치 앞서나가서 1위 주자와 2위 이하 그룹 사이가 너무 멀어 서로 보이지 않는 상황인 데다 이 경기는 시간이 흐르면 종료되는 ‘시간게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KSOI의 여론스코프]대권 2위그룹 “장기적으로는 다 죽는다”](https://img.khan.co.kr/newsmaker/909/909_34a.jpg)
새해 동시다발적으로 각 언론사에서 신년여론조사를 쏟아냈다. 관심은 단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이제 2년이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박 전 대표는 30% 중반의 지지도를 나타냈다. 심지어 40%를 넘는 조사도 있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라는 안보 정국에서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여당의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별 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점 등으로 지지도가 다소 흔들렸으나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와 관련해 공청회도 열고, 정책연구소도 출범시키면서 주춤했던 지지도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지지도 큰 폭 올라
1위 주자는 앞서나가면서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면서 다른 주자들은 너무 이르다고도 하고, 오버라고도 하고, 포퓰리즘이라고도 한다. 또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도 한다. 야권 주자들은 현 정권에 대한 거부감이 지난 지방선거의 결과처럼 대선에서도 재현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현 정권 4년차에 접어들었음에도 ‘안티’에 머물고 있다. 물론 정부여당의 정책에 대한 ‘정치적 반대’는 야당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대안적 위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유권자의 투표행태를 연구한 피오리나(Morris P. Fiorina)는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를 이야기했다.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에 기반해 유권자들이 투표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서 말하면 이른바 정권심판론 투표라고 할 수 있다. 야권은 이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선거에서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가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권 중반에 실시되는 선거에서는 중간선거적 특성을 보이면서 회고적 투표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대선에는 이런 현상이 완화되어 나타난다. 미래 지도자를 뽑는 특성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선에서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비전과 기대감이 기준이 되는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 경향이 더 도드라지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들은 이제 비전과 정책도 제시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본인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누구와 싸울 것인지 전략의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제 대중은 다음 대통령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고민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당연히 대중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차기 주자들이라면 대중이 관심 갖는 곳에 모습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자신을 부각하려는 전략도 수정이 필요하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대상과 싸우는 모습을 연출해야 최소한 2위가 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독보적인 1위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대중들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주 전략으로 삼고 있는 후보들은 상황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한 명의 독주, 다수의 지지부진’ 상황이 지속되면 다음 대선을 ‘박근혜 대 박근혜의 싸움’으로 불러야 할 수도 있다. 다른 후보들은 박 전 대표의 악재가 발생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경기에서 뛰는 선수가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는 관전자가 되는 것이다.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친이계든, 야권이든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시간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시간인데 이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다. 그리고 케인즈는 말하고 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장기적으로는 모두 죽는다’고.
윤희웅<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