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오시장이 벗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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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한 위의 광고가 차라리 공익광고네요.” 한 누리꾼의 촌평이다. 2010년 12월 21일, 주요 일간지와 무가지 등에는 서울시가 낸 “무상급식 때문에…”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식판으로 ‘주요 부위’를 가린 벌거벗은 아이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고, 각종 교육예산 삭감 리스트가 나열되어 있다. 광고의 결론은 이렇다. “128만 학생들이 안전한 학교를 누릴 기회를 빼앗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무상급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넷]차라리 오시장이 벗었으면 어땠을까

채 반나절도 안돼 누리꾼의 반박이 서울시 광고를 바탕으로 나왔다. “오세훈 서울시장 때문에…”라는 제목의 이 패러디는 서울시 건설·홍보사업 수치를 나열하며 “128만 학생이 눈치 안보고 밥먹을 기회를 빼앗겨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패러디를 만든 이는 elliot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 기자와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그는 자신을 “25세 대학생이며 서울시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벌거벗은 아이를 등장시킨 것부터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패로 서울시민을 위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진지하게 대응하기보다는 패러디와 같은 방법으로 가볍게 받아쳐주면 안될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는? 처음에 인용한 것처럼 인터넷에선 “오 시장의 KO패”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진지한 이야기도 들어보자.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미디어오늘 기고 글에서 “서울시 교육국장이라면 전체 예산의 1%도 안되는 교육예산 안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하겠지만, 서울시장이라면 토건사업에서 낭비되는 돈 수천억원만 아끼면 얼마든지 교육지원을 할 수 있다”며 “왜 자꾸 서울시 수장이 아니라 교육국장 수준에서 논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쯤 되면 서울시의 입장도 궁금하다. “무상급식이라는 것이 그렇다. 설령 700억원이라고 하더라도 10년이면 7000억원이다. 복지예산이라는 게 신설하면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지금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문제도 그렇고….”

정리하자면 서울시의 주장은 이렇다. 한강르네상스 같은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일회적이다. 길어도 몇 년이면 끝난다. 하지만 복지예산은 일단 증액되면 고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범사업도 해보고,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것이 오 시장의 입장인데, 서울시의회가 토론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면실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선 부소장에게 물어보았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이 그의 첫 마디. “대부분 삽질 사업은 계속 사업이다. 최근 몇 년에 걸치는 사업이 이런 저런 명분으로 계속 만들어졌다. 지자체 예산의 40%, 한강이나 남산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늘 50% 이상이 하드웨어 사업에 들어갔는데 지금의 재정배분 속에서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토건사업들이 과연 시급한 사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유지 보수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는 덧붙여 “지레 온 나라가 망할 것처럼 700억원을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인 양 부풀리고 과장하는 것이 책임있는 지도자가 할 소리냐”고 비판했다. 논란은 꼬리를 물고 있다. 광고모델로 나온 아이의 인권침해 논란도 제기됐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오 시장 본인이 모델로 나섰으면 좋을 뻔했다”며 “현직 서울시장이 대한민국 붕괴를 막기 위해 옷을 벗다, 이러면 해외 홍보도 잘 되었을텐데”라고 비꼬았다. 아무래도 이번 광고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맞는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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