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꾼이 롯데마트 통큰치킨 판매종료를 패러디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DC인사이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 중엔 이런 것이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같다고. 그런데 이 표현이 더 적확한 게 인터넷 여론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게다가 그 속도는 빠르다. 지난주 <언더그라운드 넷>에서 필자는 “‘치킨게임’이 진짜 ‘치킨전쟁’으로 치닫기 직전”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채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 게임오버였다.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롯데마트가 백기를 들고 투항한 것이다. “1년 내 싼 가격으로 공급하겠다”던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은 12월 16일 판매를 종료했다. 남은 닭은 연말 불우이웃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인터넷에서는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트위터에 밝힌 의견이 주효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여론은 기울었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누리꾼이 ‘통큰 치킨’에 환호한 배경에는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횡포 및 가격담합’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킨’ 관련으로는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DC인사이드의 치킨갤러리 누리꾼들이 가장 적극적이다. 롯데마트의 영업 종료예정일 이틀 전, 인터넷에서는 ‘통큰 성님 보내드리고 왔습니다’라는 사진 글이 화제를 모았다. 통큰 치킨의 사진이 든 영정을 든 치킨갤러리 누리꾼들이다(사진).
그런데 이 싸움에 또 다른 강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누리꾼들은 그를 ‘치킨전쟁 종결자’라고 불렀다. 누구?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 청사에서 열린 ‘동반성장을 위한 대·중소기업 거래관계 공정화 토론회’에 참석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회의 시작 전 이명박 대통령은 “나도 프랜차이즈 치킨을 2주에 한 번씩 시켜먹는데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고 발언했다. 며칠 전 정 수석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누리꾼의 반응은 여러 갈래다. 대통령도 한마디 했으니,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값을 내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반응도 있다. 트위터 등에서 가장 많이 지지를 얻은 반응은 이것이다. “나도 한때 BBQ(K)에서 무(물) 먹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엔 2007년 대선 전후, BBK 덕분에 홍보효과를 본 치킨 프랜차이즈 BBQ에 쌓인 구원(舊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그나저나 궁금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2주에 한 번씩’ 치킨을 시켜먹었을까? 시켜먹는다면 어느 프랜차이즈에서? 계산은 직접 했을까? 청와대 대변인실에 물었다. “그거는 뭐… 치킨 집에서 가장 잘 알겠죠.” 대변인실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정말 2주일에 한 번씩 시켜먹었는지에 대해 대변인실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통상 택배는 청와대 연풍문에서 받는 식인데 배달의 경우는 또 모르겠다. 게다가 대통령이 직접 시켰는지 여부는 더더욱…”이라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 행사 당일 참석한 또 다른 청와대 대변인실 관계자는 “업무보고 시작되기 전에 나온 발언이라고 하는데, 배석하지 않은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 VIP(이명박 대통령)의 정확한 워딩은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언론이 보도한 ‘2주에 한 번’ 전언조차 사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 쪽의 결론이 되겠다. “나도 한때…”시리즈의 다른 말처럼 이대통령의 이번 발언 역시 사실 여부가 규명되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