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강준만 지음·개마고원·1만2000원
강준만 교수는 기본적으로 강단의 학자이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저널리즘 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해온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본격적 실명비판의 포문을 연 <인물과 사상>의 발행이나 신문 칼럼니스트로서의 활동이 동시대를 기록하는 공시적 저널리즘 활동이었다면, 시대와 시대를 특정 주제어로 꿰어내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드러낸 일련의 저술작업들은 통시적 저널리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는 언론 보도를 기초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변동을 ‘실업’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살핀 책이다.
해방 직후 김구와 이승만을 지지하는 우익 청년단체 조직원은 총 323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강 교수는 이를 실업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일자리가 없었던 청년들과 행동대원을 필요로 했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이룬 상황이나 사건들의 배후에 실업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그의 분석은 4·19혁명과 5·16쿠데타에도 적용된다. 책에 따르면 1952년에서 1960년까지 대학생 연평균 증가율은 14.5%였다. 이 같은 대학생의 양적 증가는 혁명을 추동한 원인들 중 하나였다. 1960년에 10만명에 육박했던 대학생들의 30%가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면서 이들의 사회적 불만이 임계치에 도달해 있었다는 얘기다. 강 교수는 5·16쿠데타가 일어난 것도 실업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본다. 예편 대상 1순위로 곧 군복을 벗게 될 처지였던 박정희는 4·19 직후의 혼란상을 지켜보며 쿠데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고, 항명사건으로 이미 반강제적으로 예편한 상태였던 김종필이 실업 기간 중 실제적인 쿠데타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 문제는 도시화와 대졸자 수의 증가에 따라 요동쳤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된 이후 농촌을 빠져나와 도시로 집중된 인구는 만성적인 실업문제를 야기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졸업정원제 실시로 대학생 수가 크게 증가하자 고용시장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이는 또다시 좋은 직장의 전제조건으로서 명문대 입학 경쟁을 부추기는 동력이 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해 점점 파괴적 양상으로 치달아온 전 세대에 걸친 고용불안은 이제 손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됐다.
강 교수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가장 결정적인 동력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승자독식주의’라고 분석한다. 공기업과 정부 산하단체를 보은인사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권으로부터 전통적 자영업자들의 영역으로까지 무한증식하려는 대기업, 아파트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 경비원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아파트 부녀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일자리 문제는 구조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개혁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론이나 정치세력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