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닭삼각지대, 닭세권, 얼리아닭터, 닭크로드, 치격변…. 12월 9일. 일부 누리꾼은 이날을 ‘계천절’이라고 불렀다. 이날 하루, 수많은 인터넷 신조어가 쏟아져나왔다. 공통 키워드는 ‘닭’이다. 무슨 사건이 있었을까. “6개월을 밤낮없이 준비했습니다.” L마트의 공지글이다. L마트는 신상품 ‘통큰 치킨’을 이날부터 전국 82개 점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닭세권은 ‘L마트로부터 걸어서 5분 이내’의 권역을 말한다. 버뮤닭삼각지대는 인천에 있다. 누리꾼이 올린 ‘지도’를 보면 L마트 부평점과 부평역점, 삼산점을 연결한 지역을 말한다.

프라이드치킨 1마리를 5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한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9일 오전 고객들이 치킨을 사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박민규 기자
치격변은 ‘치킨계에 격변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900g 한 통에 5000원. L마트가 내건 가격이다. 통상적으로 1만6000~2만원대에 육박하는 기존 치킨업계의 가격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일부 누리꾼은 L마트가 오픈하는 오전 10시 이전에 첫 인증 사진 및 글을 올리기 위해 L마트 앞에서 기다리면서 상황을 실황중계했다. 이들 누리꾼에게 붙은 별명이 ‘얼리아닭터’다.
사실 버뮤닭삼각지대나 닭세권이라는 표현의 뜻은 이중적이다. 누리꾼들이 한편으로 ‘싼 가격의 마트 치킨’에 열광하는 까닭은 기존 프랜차이즈 치킨 업계가 지난 수년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치킨 값을 올려왔다는 의심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 프랜차이즈 치킨 값 인상으로 돈을 번 곳은 본사였지, 동네 가맹점은 아니지 않느냐”는 동정론도 나온다. “프랜차이즈 가게보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으로 승부했던 상표 없는 동네 치킨집이 전멸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L마트 홍보팀 관계자는 ‘기존 치킨시장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부인했다. “점포별로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의 평균치가 200마리이고, 최대치라고 해봐야 400마리다. 전체 치킨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7%에 불과한데, 중소상인 위주의 치킨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다.”
미끼상품이라는 논란도 있다. 통큰 치킨은 전화예약이나 배달이 안된다. 매장에 와서 주문을 해야 한다. 발매 첫날, L마트에 간 사람들이 기다린 시간은 평균 1~4시간. 한 유명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기다리는 동안 뭐하겠습니까? 결국 매장에 들른 사람들이 다른 상품을 구입하도록 하기 위해 닭을 미끼로 썼다고 할 수밖에요”라며 치킨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한 가맹점 주인이 거래명세서를 올렸다.
이 거래명세서가 밝힌 ‘치킨 원가’는 4970원. 그냥 튀기기 전 공급받는 닭 값이다. L마트의 통큰 치킨과는 도저히 경쟁이 안되는 원가다. L마트 치킨이 화제를 모으자, 다른 경쟁 마트도 이날 “이튿날부터 4980원짜리 치킨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공동기구를 만들어 대응할 계획이다. 바야흐로 전운이 감돈다. ‘치킨게임’이 진짜 ‘치킨전쟁’으로 치닫기 직전이다. 마냥 싼 가격에 통닭을 먹게 되었다고 기뻐할 일만은 아닐 듯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