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사계절·1만5800원
한국에서 집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곳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용가치에 비해 교환가치가 압도적으로 큰 재화이며 계급의 표지이자 욕망의 전시장이다. 2010년 3월부터 5월까지 <경향신문>에 19회에 걸쳐 연재된 기획물을 단행본으로 구성한 이 책을 채우고 있는 모든 이야기와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에서는 어느 집에 사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계층이 결정된다. 이 계층 사다리의 상위에 있는 건 아파트다. 한국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건 “기호의 소비”에 해당한다. 아파트에 사는 ‘선택받은 중산층’이라는 기호 말이다. 물론 모든 아파트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지역에 있는 몇평짜리 아파트냐가 중요하다. 이 사다리의 정점은 서울 강남지역 대형평형 아파트다. “현대 한국 중간계급의 전형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강남에 사는 것, 또 하나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사적 영역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 지형마저 재구성한다. 1990년대 이후 총선에서는 부동산 계급투표가 선거의 당락을 결정짓는 양상이 나타났다. 역대 서울 지역 총선에서 진보개혁진영의 당선 비율은 14대 56.8%, 15대 41.3%, 16대 62.2%, 17대 66.7%였지만,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공약 바람이 불면서 48개 선거구 중 40개를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기존 부동산 계급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욕망과 개발을 통한 집값 상승 기대감에 사로잡힌 이들의 욕망이 맞물린 결과다. 반대로 서울시 뉴타운 개발로 밀려난 이들이 이주한 경기도 지역에서는 투표율이 하락하면서 정치 불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거 격차가 삶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집값 격차에 따른 빈부 격차는 자녀 세대의 학력 격차로 이어진다. 빈곤의 대물림과 계층의 고착은 그 필연적 부작용이다. 거주 지역과 거주 형태에 따른 치안의 양극화와 건강 격차도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지역 공동체는 훼손되고, 사회는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향해 치닫는다.
이 같은 부동산 계급사회를 초래한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책은 그것을 ‘건설불패의 신화’ ‘토건동맹의 지배’로 요약한다. 한국은 건설사의 낙원이다. 아파트 선분양제, 건설비 부풀리기,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한 정부의 규제완화 등이 이 낙원을 만든 요소들이다. 이 낙원을 인적으로 떠받치는 힘은 토건자본과 관료, 정치인의 공생 관계다. 2007년 기준으로 고위공직자들의 절반이 ‘버블세븐’ 지역에 산다. 정치인들은 개발 공약을 미끼로 표를 낚아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한국형 부동산 개발은 부동산 개발의 보편적 모델이 아니다. 바로잡아야 할 기형적 현상이다. 책은 독일과 일본의 사례에 대한 검토를 통해 임대주택 비율 확대, 개발 이익 환수 등 부동산의 공공성 회복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