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면에서는 좌파, 생활면에서는 우파’. 철학자 탁석산이 구분하는 대한민국 인간 유형 4가지 중 하나다. 누구에게나 이런 속성이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는 ‘사과가 되지 말고 토마토가 되라’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표리일치의 토마토가 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40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40대는 정글과 같은 엄혹한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하면서 적절히 사회 메커니즘에 순응하게 되는 시기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결혼 후 자녀들의 성장에 따른 교육비용 마련의 고민,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부양의 고민, 집도 하나 있어야 하는 주택(부동산) 마련의 고민, 월급으로는 늘 빠듯하니 한몫 잡을 수 있을까 해서 기웃거리게 되는 주식투자 고민이 이들에게는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러면서 20~30대 때의 젊음을 지배했던 이상적 사고를 부여잡고 있으면서도, 실제 드러나는 생활의 모습은 보수적 속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40대는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를 갈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이들의 선택은 일관적이지 않다.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이들은 늘 고민하는 것이다. 대체로 20대와 30대의 젊은층은 진보적 성향의 정치세력을, 50대와 60세 이상의 고령층은 보수적 성향의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데 별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40대는 그렇지 않다. 최근 선거에서 40대의 선택을 보면 이들의 고민이 읽힌다.
경제·교육·주거 문제에 대한 실망감
40대의 투표 결과를 보면,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 양쪽이 각각 47.9%와 48.1%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 50.6%, 여기에 ‘이회창 후보’ 13.3%를 더하면 보수성향 후보에게 64% 가량이 몰렸다. 반면 ‘정동영·문국현·권영길’ 등 소위 진보적 성향 후보에게는 40대에서 35% 정도만 투표했다. 보수적 성향의 표출이었다.
이런 흐름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다시 변했다. 서울에서는 ‘한명숙 후보’에게 54.2%가 투표했다. ‘오세훈 후보’ 35.9%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더 많았다. 경기에서는 이보다 격차가 작긴 하지만 김문수 후보보다 유시민 후보를 8%포인트 정도 더 많이 지지했다.
40대가 최근의 선거에서 어떤 성향의 후보를 지지했는지 변화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세대간 균형추 역할을 하던 40대가 어느 한쪽으로 쏠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최근에는 이들이 진보성향 후보에게 더 반응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변심’은 왜 나타나는 것인가. 먼저 현 정권이 이들 40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대는 경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연령대보다 높은 편이다. 그래서 ‘경제 고관심층’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성장, 경제회복 등에 대한 기대감을 이들로 하여금 갖게 함으로써 몰표를 얻었지만, 이후 이들이 생각하는 경제, 즉 안정적 일자리, 자녀교육과 주거문제에서의 경제적 부담 완화 등에 대한 요구까지 해결해주지 못한 데 대해 실망감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의 40대가 과거 40대와 정치적 성향에 있어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지적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고 또 주체적으로 참여했던 소위 386 세대가 40대로 대거 진입하면서 40대 중에 진보적 성향을 강하게 띠는 사람들이 최근 많아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40대에서 사상적 진보성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의 일방주의적·권위주의적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40대들이 비판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 지지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40대의 변화는 최근 우리나라 대중의 ‘진보로의 이동’을 이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의 연속 빅매치가 예정되어 있다. 그때까지 이들 40대가 이번 지방선거의 모습을 유지할지, 아니면 다시 복고현상이 나타날지 지켜보는 것이 선거 결과를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늘 이들이 손들어주는 세력이 승리해왔기 때문이다.
윤희웅<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