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와 돼지고기의 두 가지 메뉴만 있는 경우, 돼지고기를 먹은 다음날엔 닭고기를 먹으려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닭고기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직전에 먹은 것이 마침 돼지고기였기 때문일텐데, 환상적인 맛이 아니었다면 메뉴 교체 가능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인·정치세력이 밥상에 올라오는 선거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을까. 일정 간격을 두고 치러지는 전국단위 선거들에서 여권·야권이 주고받듯 승리하는 것을 보면 법칙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큰 틀에서 이런 현상이 확인되기도 한다.
![[KSOI의 여론스코프]“차기정부는 진보정권 희망 56%](https://img.khan.co.kr/newsmaker/897/897_36a.jpg)
지난 참여정부 초반부터 정기적으로 현 정부 이후의 정부는 어떤 성향의 정부였으면 좋겠는지 질문을 해 왔다. 대체로 참여정부 전반부까지는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를 희망한다는 응답이 ‘보수안정 성향의 정부’ 응답보다 우세하다가 중반 이후에는 양쪽이 비슷해졌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중반부로 가면서 다시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가 높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참여정부 초기는 ‘부패한 보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컸던 시점이었고, 참여정부 중반부터는 ‘양극화 심화에 대한 대책 마련 부실’로 대표되는 실정이 부각되면서 ‘무능한 진보’라는 보수세력의 공격이 세졌고, 유권자들도 진보정치세력에 실망이 커진 시기였다. 이후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 뉴라이트 등의 보수세력을 나타내는 용어가 상당히 자연스럽게 사용되었고, 이와 함께 ‘보수안정 성향의 정부’를 희망한다는 여론도 높아져갔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참여정부 초반 때처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7월에는 ‘진보 성향의 정부’라는 응답이 56.2%로 ‘보수 성향의 정부’라는 응답 33.2%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KSOI의 여론스코프]“차기정부는 진보정권 희망 56%](https://img.khan.co.kr/newsmaker/897/897_36b.jpg)
역대선거 ‘반작용 정치’가 위력 보여
우리나라 선거에서는 현직에 있는 정치인 또는 현 집권세력에 쉽게 표를 던지는 이른바 유권자 관성(voter’s inertia)보다는 오히려 바람과 반감, 반작용의 정치가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러한 현상이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반작용 정치’는 새로운 변화가 용이해진다는 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그만큼 정치세력의 교체가 잦아 사회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물론 이를 전부 반감과 반작용 때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지난 4월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뉴타운, 재개발 등 지역 개발을 강조하는 후보와 보육과 저소득층 지원 확대 등 복지 확대를 강조하는 후보가 맞붙는 경우 누구를 지지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복지 확대를 강조하는 후보’라는 응답이 65.1%로 ‘지역 개발을 강조하는 후보’라는 응답 32.1%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온 조사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재개발과 뉴타운 등 지역 개발 이슈가 후보자들의 주요 공약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짧은 기간에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우리사회 방향을 묻는 조사에서도 ‘사회적 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74.2%로 ‘개인의 자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 23.9%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KSOI, 2010.4.12~13). 이런 조사 결과들은 실제 대중들이 진보 이슈에 이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희웅<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