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가장 적극적인 통일 관련 정책제안이 하나 나왔다. 바로 ‘통일세 신설’이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제안한 것인데 그간 현 정부가 북한에 대해 차가운 입장을 보여온 터라 이번 제안에 대해 다소 뜬금없다는 분위기다. 정책이 공감을 얻으려면 소설의 기승전결처럼 흐름이 있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등산하다 낚싯대 꺼내는 식이니 국민들의 호응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통일세 신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8%였고, ‘찬성한다’는 응답은 33.2%였다. 반대 의견이 월등히 높게 나온 것이다.
20~30대, 화이트칼라·학생층 반대 높아
‘반대한다’는 응답은 20~30대, 화이트칼라와 학생층에서 특히 높은 편이었다. 보통 통일에 적극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진보성향이 강한 젊은층, 화이트칼라와 학생층 등에서 찬성이 더 높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쪽은 고령층이 아니라 젊은층이었다. 그런데 이번 통일세 신설에 대해서는 젊은층에서 오히려 반대가 높았다. 고령층에서도 반대가 높긴 했지만 젊은층의 반대 비율에는 훨씬 못 미쳤다.
이렇게 통일정책에 대해 우호적인 젊은층에서도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일세 제안이 정책으로서 진정성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메시지는 전적으로 메신저의 문제’라고 말했다. 메시지가 효과가 있으려면 이를 전하는 메신저가 적격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지 않고 오히려 매듭을 더 단단히 조여 왔다고 할 수 있는 이 대통령이 메신저가 되어 통일세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던진 격이니 메시지 효과가 적은 것이다.
정부는 먼저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심상치 않음을 돌아봐야 한다. 지난 8월 21일, 이 대통령의 임기 2년 반을 평가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경제’(26.5%) 다음으로 ‘남북관계’(22.7%)가 높게 나왔다. 그런데 6개월 전인 올 2월 조사에서는 ‘남북관계’라는 응답은 네 번째였다. 순위(4위→2위)가 껑충 뛰었고, 비율(10.6%→22.7%)도 매우 높아진 것이다.
올 상반기 천안함 사태 탓이 크겠으나 이후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긴장이 더욱 고조되니 ‘남북관계’를 지목한 사람들이 급증한 것이다. 과도한 대북 퍼주기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는 북한에 강경하게 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 정책변화를 불러오지만 이 또한 균형점에서 이탈하면 질책이 많아지는 법이다.
통일을 위해 재정이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세 제안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현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평소 눈도 마주치지 않는 앙숙관계인 옆집을 위해서 저축보험을 하나 들어줘야겠으니 갹출을 하라는 가장의 말을 어느 날 아침 들었다 치자. 가족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먼저 내왕도 하고, 음식도 주고 받는 모습을 보인 후에 가족들을 설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중에 수해피해를 크게 당한 북한에 쌀을 지원하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 쌀지원이 통일세와 현 정부 대북정책 사이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혼란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윤희웅 |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
조사개요 시기 2010. 8. 21 방법 전화면접조사 대상 전국 19세 이상 남녀 800명 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