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습 가전·에너지절감형 주택·관상어 등 ‘아열대산업’ 시장 커질 듯
한반도의 아열대화는 산업계에 ‘위기이자 기회’다. 주거문화와 관광지형의 변화는 새로운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다.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 신종변이 해충의 등장으로 인한 피해, 잦은 낙뢰사고 등 각종 기상이변과 생활 피해 역시 그 이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 비즈니스 기회도 생겨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온난화로 돈벌자”며 ‘아열대산업’이 뜨고 있다. 침수 피해 방지용 전용주택, 신종변이 해충용 살충제, 낙뢰 피해 확인 전문회사의 등장이 그것이다.
‘물먹는 하마’ 기능 갖춘 청정 가전 인기
날씨, 기상, 기후가 우리 주변의 생활용품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면 차후 제품의 트렌드를 짐작할 수 있다. 높은 기온과 많은 강수량은 우선적으로 주거환경의 변화를 불러온다. 보다 청량하고 안전한 지역, 보다 시원하고 깨끗한 주택으로 소비자의 관심이 옮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고지대에 부유층 동네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 때문이다.
케이웨더 반기성 630예보센터장은 “기온 상승은 냉방을 위한 전력의 과소비를 부를 것이고, 이는 전력 과부하로 이어진다”며 “이런 것을 줄이기 위한 에너지 절감형 주택이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적으로 에너지 절감 대책을 쏟아낼 것이고, 개인들도 전체 가계소비 중 에너지비용 지출이 클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과 선택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 주택전문가들은 주택에 태양광이나 풍력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장치가 들어설 것이고, 옥상정원 등 에너지 절감형 주택문화가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옥상정원의 경우 독일에선 오래 전 보급되기 시작했고, 미국의 시카고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시가 설치비를 지원하고 나섰다. 최근 급증한 강수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한 주택건설회사가 홍수가 나도 피해를 보지 않는 ‘침수피해 방지 개인주택’ 시장을 개척했다. 연면적 155㎡의 3층짜리 건물로 1층은 기둥을 세워 주차장으로 쓰고, 2층부터 거주공간으로 사용하는 것. 2007년 이 주택을 처음으로 내놓은 이후 매년 수주 건수가 2배 이상 늘고 있다.
습도가 높아짐에 따라 제습기, 옷장 방습기 등이 필수 가전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국내 가전업체가 동남아 등지에 수출하고 있는 상품을 보면 2070년 우리 가구의 가전제품을 짐작할 수 있다. 청호나이스의 이과수 얼음정수기는 최근 열대성 기후인 데다, 중요 강의 70% 이상이 세균으로 오염된 인도네시아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다수 주민이 생수나 정수기를 사용하는데 얼음까지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정수기라는 점으로 어필한 것. 이집트에서는 LG전자의 스팀 다이렉트 드라이브 세탁기가 잘 팔린다. 이 제품은 이집트에서 처음 소개되는 스팀 기능의 세탁기로 악취, 주름제거, 미세먼지 제거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갖춰 상류층 여성들에게 인기다. 물론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연중 비가 오지 않는 사막기후와 미세먼지가 많은 이집트 지역에서 스팀 세탁기는 세탁 시간을 크게 줄여 주고 있다는 평가다.
가전업계는 한반도 전체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는 것에 대비해 적절한 습도를 자동으로 유지하는 기능을 갖춘 제습기를 비롯해 스팀청소기, 음식물처리기 등 좀 더 세분화된 품목을 출시하고 있고, 유통업계도 관련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김명주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장은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에서 펴낸 <기상기술정책> 2009년 12월호에서 장마철 습기제거 기능으로 히트를 친 ‘물먹는 하마’의 출현을 기후에 따른 제품 개발의 좋은 사례로 꼽았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버버리’ 역시 무엇보다 습하고 비가 자주 오는 영국의 기후를 바탕으로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샘소나이트 여행가방 또한 기후와 온도차로 인한 환경 변화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시켜 물에 빠져도 방수가 될 만큼 습한 환경에서도 눅눅하지 않게 옷을 보호해준다는 콘셉트가 오늘날 명품 여행용가방으로 인정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주올레 같은 저탄소관광 인기 끌 것
농작물의 재배선 북상은 기존 주산지의 지역경제를 흔들 것으로 보인다. 사과의 경우 대구에서 경기도 포천의 비무장지대까지 올라왔다. 감귤이나 한라봉의 경우도 제주도를 넘어 남해안까지 올라왔고, 녹차 또한 전라도 보성이 아닌 강원도 고성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당도나 품질면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이는 기후 온난화에 따른 농어업 생산양태가 크게 변하면서 농어업 생산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모습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적정 재배품목과 재배지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 향후 풍기, 개성, 금산 등 인삼으로 유명한 지역도 온난화에 따라 결국 북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인삼의 경우 다량의 사포닌 성분을 함유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배수기능과 습기, 큰 일교차 등의 조건이 맞아야 한다.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현에서 생산하는 쌀인 ‘히노히카리’가 좋은 사례다. 1990년 이후 일본 서부에서 가장 맛있는 쌀이란 평가를 받으며 2007년 규슈 지역 쌀농사의 56%를 차지했던 이 품종은 그러나 2003년 이후 품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삭이 영글 무렵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현미의 비율이 높아진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이미 유럽이나 칠레 등에서는 포도 재배지가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다. 전통의 풍미를 지키기 위해 적절한 기후를 찾아 가는 것이다.
아열대와 함께 온 관상어시장은 특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바다 상태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져 양식업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어업이 불안정하지만 ‘관상어 산업’이 양식산업의 새로운 소득창출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연간 3000억원대로 추정되는 관상어 시장 규모를 2020년까지 연 6000억원 이상의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광지형 관련 산업은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김의근 탐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특히 날씨에 따라 관광객 만족도가 변화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관광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 인자”라며 “결국 기후변화로 관광활동과 목적지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바뀌고, 국내외의 관광 이동 흐름이 계절적·지리적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스키산업은 2001~2002년 따뜻한 겨울의 영향을 받아 평년보다 스키시즌 단축(11%), 인공제설 비용 상승(35%), 방문객 감소(12%)로 운영수익이 19% 정도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국내 사례를 보면 제주의 경우 기온 상승으로 인하여 겨울 관광시즌에 개최되던 한라산 눈꽃축제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기온 상승에 따라 수온도 상승하여 제주시에 위치한 이호해수욕장의 경우 해수욕장 개장일이 2007년에는 7월 1일, 2008년에는 6월 28일, 2009년에는 6월 20일로 변경됐다. 올해는 하루 이른 6월 19일에 개장했다. 또한 기온과 수온 상승으로 인해 2009년에는 최초로 해수욕장 야간 개장을 실시했다. 해수욕장 개장온도, 일명 ‘비키니 전성온도’라고 하는 24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를 염두에 둔 생태여행도 새롭게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기존의 대중관광 형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녹색관광의 형태에서 보다 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온실가스를 완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제안된 저탄소관광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며 “제주의 올레길이 바로 그런 예”라고 말했다.
기존의 자동차를 이용한 제주관광을 벗어나 제주 해안가를 중심으로 해 직접 걸으며 제주의 문화와 자연을 즐기는 제주 올레 코스는 그 매력성과 저탄소 배출이라는 정책적 시사점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트래킹 코스 개발 붐을 이끌고 있다.
전염병 창궐로 의료업 최대 수혜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크게 확장될 산업으로는 의료분야가 꼽힌다. 반기성 센터장은 “아열대가 되면 기온과 습기 상승으로 인해 세균들이 더욱 왕성하게 번식하기 때문에 식중독이 발생하고, 전염병이 창궐할 것으로 본다”며 “페스트가 전세계를 휩쓸었던 시기를 보면 비가 많이 오고 기온이 상당히 상승한 시기였다”고 분석했다. 결국 의료산업이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상백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는 “이상고온으로 인한 폭염과 기상재해, 감염성 질병, 환경성 질병이 늘 것”이라며 “고온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사람은 항상성 유지를 위한 체열조절 능력이 감소하여 열경련, 열기절, 열피로, 일사병 등과 같은 고온 관련 질병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고온은 사망에 이르게도 한다. 미국의 경우 매년 평균 240명 이상이 폭염과 관련하여 사망하고 있다. 1995년 시카고에서는 5일 동안 최고 기온이 34~40도인 폭염이 발생했는데, 다른 해에 비해 사망자는 855명 증가하였고, 병원 내원율은 11% 증가했다. 영국에서는 폭염 사망 관련이 2050년에는 2793명, 2080년에는 3519명이 더 발생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온과 사망의 관계를 보면 30~32도부터 사망이 증가한다는 보고서가 있다. 특히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오르면 최고기온이 30도일 때에 비해 약 50% 증가한다고 한다. 29.9도에서 1도 상승할 때마다 사망률이 3% 정도 증가하고, 폭염이 7일 이상 지속시 사망률이 9%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상재해 또한 의료산업을 키울 전망이다. 기상재해로 인한 부상과 사망, 영양상태의 부족, 피난시설의 수용인원 증가와 물 공급 부족, 호흡기질환과 설사환자 증가, 정신건강에 대한 영향, 수인성 질환 등 다양한 건강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올 수 있는 우울, 불안 및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질환도 의학계에서는 이미 분석에 들어갔다.
기상재해가 증가하다보니 이를 보장해주는 풍수보험 등 보험산업 또한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올 여름에 덥지 않으면 에어컨 구입비 중 20만원을 돌려주겠다’며 마케팅을 한 삼성전자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삼성화재에 40억원의 보험을 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기성 센터장은 “풍수해보험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스포츠 등이 날씨로 인해 이뤄지지 않을 때 보상을 받는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며 “기후와 관련한 상품은 현재 보험회사들이 새로운 영역으로 눈독 들이고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기후예측 프로그램의 개발도 활발하다. 예상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으로, 기후정보를 제공하는 등 관련 산업도 크고 있다. 특히 산업계에서는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게릴라성 폭우가 늘면서 기상정보에 대한 소비도 늘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에서 기상정보 회사들이 급격히 성장한 이유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