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아직까지 초보 수준… 환경성과지수 전 세계 94위
지난 1월 서울에서는 관측 사상 가장 많은 하루 적설량(25㎝) 기록이 작성됐다. 봄엔 한파가 몰아쳐 4월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2.5도나 낮았다. 8월 한 달 동안 서울에 0.1㎜ 이상 비가 내린 날짜 수는 24일이나 됐다. 사상 최대의 정전사태를 낳은 태풍 ‘곤파스’는 순간 풍속 30m로 한반도를 쓸고 지나갔다. 이변성 기상상황이 속출하면서 기후변화 대응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권원태 국립기상연구소장은 “기상이변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조심스럽다”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의 겉과 속이 다른 녹색성장 정책을 비판하는 녹색연합의 시위 현장. |녹색연합 제공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제적 평가가 그렇다. 미국 예일대 환경법·정책센터와 컬럼비아대 국제지구과학정보센터가 2009년 발표한 환경성과지수(EPI)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 163개국 가운데 94위였다. 2008년보다 순위가 43계단이나 떨어졌다. 온실가스 배출량 관련 지표도 성적이 저조하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과 2009년의 1년새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03위에서 118위, 발전부문 온실가스 집약도는 68위에서 78위, 산업부문 온실가스 집약도는 98위에서 146위로 각각 곤두박질쳤다. 세계보건기구가 2007년에 발표한 ‘질병의 환경적 부담’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한국은 국민 1000명당 장애보정 손실연수(DALYs)가 26년으로 세계 51위를 차지했다. DALYs는 기후·생태 변화 등 환경요인으로 특정한 질병에 걸리거나 수명이 단축됨에 따라 초래되는 고통을 손실연수로 계산한 지표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05년 환경지속성장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전 세계 146개국 중 122위에 머물렀다.
오진규 에너지경제연구원 녹생성장연구본부장은 “ESI 지표에 대한 논란이 있다”면서도 “우리가 매우 낮은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경제규모 세계 15위, G20 정상회의 유치 등 한국의 외형적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 발표
2008년 8월 발표된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은 정부의 기후변화 대책을 담고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은 신국가 발전 패러다임이다.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한국은 온통 ‘녹색 구호의 물결’로 넘쳐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고 ‘녹색성장 5개년계획’을 수립했다. 지난달 15일에는 정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국가전략과 실천방안을 내놓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최근 세계 각국의 녹색정책을 다루는 정책보고서의 첫 번째 사례로 한국을 소개했다. 이 보고서에서 UNEP는 “한국의 녹색성장정책 추진은 기존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국가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기회”로 평가하고 “다른 주요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파급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는 어디까지나 보고서에 쓰인 글로써만 존재한다. UNEP도 한국의 기후변화 대처가 어떤 효과를 낳았으며 앞으로 어떤 결실을 거둘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정부 비전 발표 후 2년이 넘었지만 그 성과는 이렇다 할 게 없다”는 환경단체의 평가가 훨씬 더 객관적으로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13일 녹색성장위원회 보고대회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종달 경북대 교수(경제학과)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일련의 정부 대응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며 “하지만 CO2 감축을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든지 하는 일부 정책은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등 녹색(환경)산업 육성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환경적인 4대강 사업과 무분별한 자전거도로 건설계획 등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오재호 부경대 교수(환경대기학과)는 “대도시에 자전거도로를 만든다고 하는데 시민들이 출·퇴근할 때 자전거도로를 얼마나 이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녹색공급(자전거도로)과 녹색수요(출·퇴근시 이용 빈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정책은 결국 ‘녹색수요자’를 소외시킴으로써 정부가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녹색 수요자’ 참여 이끌어야
녹색수요자의 참여 없는 정책이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전력 사용량이 꼽힌다. 예컨대 올 상반기 전력 소비는 전년에 비해 무려 7%나 증가했다. 가정용 전력 사용량의 13%는 대기전력이라고 한다. 대기전력이란 전원을 켜지 않더라도 콘센트를 꼽아두면 소모되는 전력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국이다. CO2 배출도 세계 10위다.
에너지 소비의 83%를 CO2 발생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명균 계명대 교수(에너지시스템학부)는 “에너지 사용량과 CO2 배출량은 비례관계에 있다”면서 “CO2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달 교수는 “중앙정부는 CO2 감축, 지방정부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에 중점을 두는 이원적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결국 주민의 생활을 리드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녹색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는 주문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성공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사례는 많다. 미국 버클리시는 태양광 주택 시설비를 제공하고 상환은 20년 동안 재산세에 포함해서 환수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볼더시는 녹색포인트를 얻어야 건축허가를 내준다. 녹색포인트 획득은 물과 에너지 절약, 폐기물 재활용 등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는 탄소배출량 감축만이 기후변화의 대응이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지구온난화이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CO2 배출이라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 89%가 CO2라는 수치도 이런 논리를 뒷받침한다. 오진규 본부장은 “배출 요인이 가장 큰 것부터 대응해 나가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면서도 “성장(산업발전)과 녹색(CO2 감축)을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가 방천리 쓰레기매립장을 신재생에너지로 자원화해 매년 50억원의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사례로 꼽힌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