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한국과 미국의 양 정상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만나 대한민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이 행사하도록 예정돼 있던 시기를 3년 7개월 뒤로 연기했다. 국민들이 월드컵 분위기에 빠져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에서는 별다른 논의도 하지 않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슬그머니 처리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근대국가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국방 주권의 확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분강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추진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말 국민 대다수는 분노했을까.
아니다.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 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미 군사 공조로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한 것으로 잘한 일이다’는 응답이 무려 63.9%였다. 반면에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 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잘못한 일이다’는 응답은 29.1%에 그쳤다.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보다 훨씬 높았다.
논란이 될 만한 결정에 대해 국민들이 좋게 평가해 주고 있으니 정부에서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흐뭇해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들이 왜 전작권 환수 시기 연기에 대해 이처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천안함 사태로 북한에 대한 경계심리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천안함 사태에서 보여 준 우리 군의 역량에 대해 불신이 강화된 탓도 크다. 정부와 군 당국은 조사 결과에 좋아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대북강경기조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은 결과 ‘방향은 유지하되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2.7%로 가장 높았다.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응답도 28.7%나 됐다. 즉 재검토 내지는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70%가 넘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의 기조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응답은 27.4%에 머물렀다.
‘방향은 유지하되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와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은 20~30대의 젊은이, 직장인, 학생 등 층에서 높은 편이었다. 반면에 ‘현재의 기조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응답은 60세 이상의 고령자, 저소득, 저학력 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현 정권 출범 이래 대북 강경 기조가 계속되면서 남북협력 관계가 후퇴되고 있다는 평가가 높아지고, 남북 간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대해 일반 국민들의 거부감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남북 교류 사업, 지속돼야 65% vs 축소해야 34%
한편 천안함 사건 이후 일부 보수 단체에서는 남북 교류 사업을 제한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은 제한·축소 없이 계속돼야 한다는 쪽이었다.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교류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경제 분야의 남북 교류는 지속돼야 한다’는 응답이 64.9%로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제한 또는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 33.6%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더 높았다.
‘경제 분야의 남북 교류는 지속돼야 한다’는 응답은 30대와 40대, 월 400만원 이상 소득층,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등 직장인층에서 특히 높았다. 정치성향별로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층과 이 대통령 국정 운영 부정평가층에서 특히 높은 편이다.
천안함 사건에 따른 우리 정부와 미국의 북한 제재 움직임이 분주해지면서 한반도에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 정권 초기에는 남북 긴장관계 형성이 보수성향층의 결집을 유도하면서 현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대중은 북한과 대립만 하고 관계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완화된 군사적 긴장만 이 정권이 높여 놨다고 하면서 다음 번 선택 때 주저할 수도 있다. 대중은 불안해지는 것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다.
<윤희웅 | KSOI 조사분석실장>
조사개요 시기 2010. 7. 17 방법 전화면접조사 대상 전국 19세 이상 남녀 800명 오차범위 ±3.5%P(95% 신뢰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