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운동세대 활동가들 복귀…이명박 정부 후반기 대립각?
“만약 그 언론의 표현이 ‘이게 잘못된 일인데 두 명이 주도했다’는 뉘앙스로 말하려는 것이거나 참여연대의 의사결정 과정이 미흡하게 처리됐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실과 다르다.” 6월 22일 기자를 만난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말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에 보낸 참여연대의 천안함 사건 관련 서한은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일까. 중앙일보는 6월 16일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발송한 서한은 이 단체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이 주도해 작성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당시 회의에는 이 사무처장과 평화군축센터 구갑우(북한대학원대 교수) 소장, 평화군축센터 실무자인 김희순·곽정혜 간사 등이 참석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번 ‘천안함 유엔 안보리 참여연대 서한’ 사건은 그동안 운동의 공백기를 가진 참여연대 2세대 386운동 그룹을 전면에 등장하게 했다. 6월 16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 건물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처장은 “당연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은 구갑우 교수고, 실행위원을 맡고 있는 핵심 상근 인원이 나이기 때문에 주도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평화군축센터 명의의 보고서가 참여연대의 동의 없이 나간 것이 아니고, 또 일일이 회람하고 의견을 수렴해 작성했기 때문에 서한 작성과 발송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천안함 안보리 서한 발송 내부문제 없다”
참여연대의 의사결정 과정은 조금 독특하다. 참여연대 산하에는 14개 센터가 있다. 센터는 다시 전문가 그룹과 사무처 간사가 있다. 센터별 전문가 그룹은 주로 변호사나 교수 등 해당 분야 전문가 20~30명으로 구성된다. 일상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1주일에 한 번, 월요일 오전에 열리는 상임집행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참여연대 사무처의 실행위원회에서 센터의 사업이나 입장 표명 등을 결정한다. 실행위원과 상임집행위원은 메일로 안건을 회람하면서 동시에 결정하게 되어 있다. 최현주 참여연대 교육홍보팀장은 “사무처 간사는 내부 결재와 회람 없이 보도자료를 낼 수 없으며, 실행위원회 역시 단독적으로 업무 진행이 불가능한 형태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각 센터는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참여연대 센터’ 명의로 나가게 되어 있다. 최 팀장도 “이번 (안보리 서한)건의 경우 통상적인 의사결정 과정 상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라고 덧붙였다.
6월 16일 ‘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장. 시민단체가 참여연대 탄압 중단 촉구를 요구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단상에 참여연대 측 인사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 회의장 밖에는 눈에 띄는 인사가 있었다. 김기식 전 사무처장. 그는 현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과 김민영 사무처장은 이날 참석한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박원순 전 사무처장에 이어 사무처장을 맡았던 김 위원장은 TV토론 등을 통해 얼굴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봉변도 당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기 위해 참여연대를 나서던 김 위원장을 알아본 보수단체 쪽 인사들은 그의 멱살을 잡고 옷을 잡아 찢는 등 폭행을 가했다.
김기식·이태호 지난해 하반기 복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나 차병직 변호사,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연대를 이끈 1세대라면 김민영 사무처장이나 김기식 정책위원장 및 이태호·박원석 협동사무처장 등은 386운동그룹 출신으로 2002년 이후 참여연대를 이끈 2세대다. 박원순 변호사 등이 2000년 총선낙천낙선 운동 국면을 주도했다면 이들 2세대는 2004년 탄핵 촛불시위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 파병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집권 후반기부터 이들 2세대는 활동을 중단했다.

참여연대 2세대 그룹의 핵심 인사들. 왼쪽부터 김민영 사무처장 | 김석구 기자, 김기식 정책위원장 | 박민규 기자, 이태호 협동사무처장 | 참여연대 김은진, 박원석 협동사무처장 | 김석구 기자.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은 “그동안 참여연대 리더십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기식·이태호 두 사람은 안식년 등을 맞아 2년 동안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박 처장 역시 2008년 촛불시위 국면에서 광우병대책회의 일을 맡으면서 참여연대 활동가 최초로 옥고를 치르는 등 1년여 공백이 있었다. 최 팀장은 “14개 센터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 중에 한 건씩만 협의하더라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그동안 김민영 처장 혼자 고군분투하는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호 처장은 지난해 10월, 김기식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각각 복귀했다. 현재 업무 분장은 사회경제 부분은 박 처장, 시민참여와 평화군축 부분은 이태호 처장, 권력감시 부분은 김기식 위원장이 각각 담당해 김민영 처장의 업무 부담을 덜고 있다.
6월 16일 조선일보는 ‘참여연대 누가 이끄나’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참여연대 1세대가 주도했던 운동이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운동으로 주목을 받았다면, 김기식 현 정책위원장 등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세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대안보다는 이념이 지배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이번 안보리 서한을 주도한 인물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이라면서 “이씨과 김씨(김민영 사무처장)는 모두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80년대 중·후반에 총학생회 간부를 지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절의 서울대 총학생회 주류는 주사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핵심 인사들이 과거 ‘친북’의 영향권 내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태호 처장은 “사실 개인적으로 참여연대 활동 초기에 휴가를 내고 법륜 스님을 도우면서 탈북자 꽃제비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면서 “우리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 ‘반 전대협 학생 조직이 떴다’고 칭찬하던 조선일보가 모호하게 주사파와 연결시킨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86학번인 이태호 처장은 1989년 상반기에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하반기 사무국장이 김민영 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다. 김민영 처장과 김기식 처장은 서울대 인류학과 85학번 동기다. 이 처장 등은 속칭 ‘관악자주파’로 분류됐다. 이후 진보학생연합 등 학생운동 그룹과 손을 잡고 기존 이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학생운동, 즉 ‘21세기진보학생연합’의 주축이 된 그룹이다. 역시 참여연대 창립 멤버인 박원석 처장은 동국대 사회학과 88학번으로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지낸 뒤 참여연대 운동에 합류했다.

참여연대 1세대 그룹의 핵심 인사들. 참여연대 1세대는 변호사·학자 그룹이 주로 맡았다. 왼쪽부터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김창길 기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강윤중 기자, 차병직 변호사 | 남호진 기자.
현재의 참여연대가 ‘이념’에 경도됐다는 주장에 대해 1세대 활동가는 어떻게 평가할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리더가 누가 되는가에 따라 그 단체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념에 가까워졌다는 지적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동시에 요즘같이 사회가 후퇴하는 시기에는 ‘재야적 발상과 실천’이 좀 더 강조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1세대로 참여연대를 이끈 박원순 상임이사의 영향력은 아직도 남아 있다. 박원순 상임이사가 만든 아름다운가게는 참여연대 회원 대상 프로그램인 알뜰시장이 모태다. 아름다운재단 역시 문화사업국에서 육성해 창립됐다. 희망제작소 역시 박원순 상임이사를 중심으로 분화돼 나간 조직이다.
참여연대로부터 파생된 시민운동그룹
참여연대 주변에서는 반농담으로 이들 참여연대에서 분화되어 나간 단체를 ‘아름다운 가문’이라고 부른다. 박원석 처장은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의 창립자인 동시에 한국사회 시민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면서 “특히 참여연대가 제도 개혁이나 입법에 강한 것도 초기 박 변호사와 함께 들어온 변호사 그룹이 닦아 놓은 운동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참여연대 재직 시절 각 센터가 장기적으로 독립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김상조 소장이 이끄는 경제개혁연대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분리돼 독립한 단체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에 참여연대는 2세대 핵심 인사들이 외국 유학을 가거나 감옥 생활을 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사진은 광우병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맡았던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의 ‘출소’를 환영하기 위해 회원들이 마련한 환영식 모습. |참여연대
이명박 정부 들어 참여연대 활동이 자주 노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최현주 팀장은 참여연대 내적 문제보다 외적 요인이 더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과거 참여연대의 활동은 대부분 구체적인 영역에서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는 작은 이슈였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는 워낙 큰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가 연달아 터진다. 이를테면 4대강 문제와 같은 행정의 전반적인 문제는 참여연대에서 어느 센터가 담당해야 하는지 늘 내부 논쟁이 있을 정도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박원순상임이사보다 먼저 사무처장을 맡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5주년 행사 때도 강조했지만 참여연대가 앞으로 국제적 이슈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면서 “천안함 이슈가 국내 의제를 국제사회로 가져간 거라면 앞으로 아시아 민주주의와 같은 사안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원하든 원치 않든 ‘돌아온 2세대 그룹’이 참여연대 운동의 전면에 나선 셈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에 이들이 이끄는 참여연대는 어떤 활동 모습을 보여 주게 될까.
원하든 원치 않든 이번 ‘천안함 유엔 안보리 참여연대 서한’ 사건은 그동안 운동의 공백기를 가진 참여연대 2세대 386운동 그룹을 전면에 등장하게 했다. 6월 16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 건물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