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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도 이해 못하는 ‘글로벌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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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의 ‘네트워크형 의사소통’ 결과물 놓고 맹비난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 슬로건은 ‘성숙한 세계국가(Global Korea)’다. “세계경제 위기, 기후변화, 핵 확산, 테러 등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이 요구되는 범세계적인 도전들”의 해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모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의제 설정 등 국제 거버넌스 구축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보여 준 대외정책의 행태, 특히 참여연대의 유엔 안보리 서한 발송에 대한 대응은 ‘어글리 코리아’의 전형을 보여 주고 말았다.

6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앞에서 ‘천안함 의문 서한’ 발송에 대해 항의 방문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에 전달하는 항의 메시지를 적은 펼침막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6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앞에서 ‘천안함 의문 서한’ 발송에 대해 항의 방문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에 전달하는 항의 메시지를 적은 펼침막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운찬 총리는 “조금이라도 애국심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외교 노력을 저해하는 것으로서 극히 유감스런 행동”이라고 했다. 청와대 박선규 대변인은 “도대체 이 시점에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힐난했다. 

더욱이 익명의 정부 관계자들은 “이적행위” “재를 뿌린 것” “뒤통수를 맞은 격” 등 극언까지 동원하면서 참여연대의 서한 발송을 맹비난했다. 또 보수 언론과 단체들까지 가세해 참여연대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러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부응하듯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명예훼손,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의 적용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시민단체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활동을 두고 이러한 범정부적 대응을 보고 있으면 정부가 국격과 거버넌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외교안보 국가영역’ 인식은 낡은 생각
MB 정부와 보수 진영은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낸 것을 극히 이례적이고 상식 밖의 일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여기에는 외교 안보는 ‘고위 정치(high politics)’이기 때문에 국가의 독점적 영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무대에서 이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낡은 인식’이 된지 오래다.

한 예로 1991년 북미와 유럽의 6개 비정부기구(NGO)로 시작된 대인지뢰금지 국제운동은 1997년 60여 개 국 1100개 이상의 NGO가 참여한 글로벌 캠페인으로 발전했고, 국가 간 조약인 대인지뢰금지협약 체결로 이어졌다. 

2008년 말에 체결된 집속탄금지협약도 국제 NGO들의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대정부, 대유엔 로비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이들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조약 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의 보복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몰두할 때, 9·11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던 이라크를 침공할 때에도 국제사회에서 반전 시위와 로비를 주도한 단체들은 미국 NGO였다.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미국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국제화하기 위해 추진한 안보리 결의안 1540을 저지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를 상대로 국제 캠페인이 전개됐을 때에도 미국 단체들이 앞장섰다.

정운찬 총리가 6월 1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참여연대 유엔 안보리 서한 발송에 대해 유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운찬 총리가 6월 1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참여연대 유엔 안보리 서한 발송에 대해 유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전쟁광’ 조지 W 부시조차도 이들 단체를 ‘애국심이 부족하다’거나 ‘어느 나라 국민이냐’는 식으로 매도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국격을 실추시켰다고 평가받는 부시보다도 못한 대통령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가 참여연대에 대한 마녀사냥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드는 씁쓸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외교와 안보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민주국가에서 성립할 수 없는 파시즘적 사고다. 오히려 외교안보정책 실패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이 일반 시민들이라는 점에서 ‘주권재민’ 정신이 가장 잘 실현돼야 할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의 성급하고 과도한 대응이 북한의 반발과 맞물려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천안함 사태로 촉발됐다는 “국가 안보상의 중대 위기”에 시민사회가 더욱 큰 관심과 우려를 표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고 자연스런 현상이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MB 정부가 내부적 협치(協治), 즉 국회와 국민에 대한 설득과 동의 과정도 없이 바로 유엔으로 천안함 사태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국가 중대위기’ 시민사회 관심은 정당
사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의사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 당사자는 바로 보수 진영이었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퍼주기론’으로 매도하면서 10년 내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발목을 잡았다. 두 정부 10년 동안 마치 한·미 동맹이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안보 불안감을 조장하려고 했던 당사자도 바로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이었다.

‘나라 안에서 그러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필자가 노무현 정부 말기 1년 동안 미국 워싱턴에 체류할 때 한국의 보수적 학자와 언론인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반미·친북’으로 공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했다. 많은 미국 전문가가 햇볕정책을 급진적이고 친북적인 정책으로 간주한 데에는 한국 보수파의 집요한 대미 외교 성과(?)였다.

이랬던 이들이 시민단체와 전문가, 야당의 합리적인 의문 제기와 우려 표명마저도 ‘색깔론’으로 덧칠하면서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합의를 운운하는 모습은 ‘적반하장’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주목할 점은 정부·언론·보수단체의 맹폭에도 불구하고 파문이 불거진 지 일주일만에 1000명이 신규로 회원 가입을 하는 등 참여연대 회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신변상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고초를 겪고 있으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정진할 수 있는 데에는 이처럼 ‘깨어 있는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에 힘입은 바가 크다. 보수파의 비이성적 마녀사냥이 오히려 참여연대의 존재 가치와 영향력을 키워 주고 셈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문점과 문제점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참여연대가 협치, 즉 ‘네트워크형 의사소통’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합조단의 조사 결과를 추가적인 정보 수집을 통해 비교하고 이를 다른 단체 활동가 및 전문가들과 면밀히 분석·검증하면서 합리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유엔 안보리 서한은 이러한 협치의 결과물이었다. 일방적이고 밀어붙이기식의 통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MB 정부와 대비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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