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참패하고 야당이 승리한 이번 지방선거 결과의 ‘의외성’은 선거 전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들 간의 큰 격차 때문에 더욱 크게 다가왔다.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여론조사에 대한 무용론이 등장했고, 심지어 특정 정치 세력을 돕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 직전에 조사된 각 방송과 언론사의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의 차이는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할 만하다. 1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나는 곳에서 1, 2위 후보가 뒤바뀐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보도된 출구조사 결과와 비교되면서 더욱 극명한 대비가 됐다. 왜 차이가 났을까.
먼저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금지기간 이전에 조사된 것이다. 현재 선거법은 선거 전 6일부터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막바지에 발생하는 여론의 변화는 반영되지 않는다. 일주일 전 조사 결과를 갖고 선거 당일 실제 결과와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선거 전날에도 여론조사 공표가 가능했다면 실제 결과와의 격차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도 각 당과 후보 캠프에서는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선거 직전 주말 조사에서 강원도의 이광재 후보가 이계진 후보를 이긴 결과가 나오고, 충남의 안희정 후보가 당선 안정권에 든 조사들이 있었다. 수도권에서는 야당 후보들의 지지도 대폭 상승 현상이 포착됐다. 그러나 공표가 금지됐기 때문에 이러한 조사 결과들이 수치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될 수 없었던 것이다.
막판에 별다른 사건이 없었는데 그렇게 여론이 변할리 없지 않으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로 인해 정권 견제 및 심판 정서가 드러나지 못하다가 선거 막바지 천안함 정국에서 빠져나오면서 표출이 된 측면이 있다.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방한, 한·중·일 정상회담 등 연이어 천안함 관련 뉴스가 생산됐기 때문에 정권 견제 정서는 묶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 천안함 정국이 걷히고 미디어공간에서 선거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그동안 잠복해 있던 정권 견제 정서가 분출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가 공표금지 전 여론조사에는 반영될 수 없었던 것이다.
선거 직전 조사 공표금지로 여론 전달 한계
한편 출구조사는 정확했는데 왜 사전 여론조사는 그렇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을 수 있다. 출구조사는 실제로 투표를 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진다. 그러나 일반 선거 여론조사는 투표장에 가지 않는 사람도 포함된다. 물론 투표할 것인지를 물어서 이른바 투표 참여 확실층을 추가적 분석을 통해 확인하지만 한계가 있다. 권리이지만 의무이기도 한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결국 시험 대상에서 제외돼야 할 표본들이 포함됨으로써 실제 투표한 사람들의 투표 결과와 차이가 나게 된다. 출구조사는 직전에 투표하고 나온 사람들에게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묻기 때문에 정확도도 당연히 올라가게 된다.
다음으로 정권 심판 및 견제 정서를 띠고 있는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투표장에 더 많이 나간 것도 사전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의 차이를 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 대체로 선거에서는 좋아하는 정치 세력의 후보를 보호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것보다 싫어하는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장을 찾는 유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이에 따라 중간평가 의미가 부각돼 회고적 투표 양상으로 전개되는 선거에서는 실제 정권 심판과 견제 정서를 띠는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투표장을 찾는다. 반면에 여당 후보 지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절박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투표장에 가는 유인이 적게 작용한다. 흔히 보수층의 결집도가 이완됐다고 표현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권 견제와 심판 정서가 특히 강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같은 40대라 하더라도 여당 지지 유권자보다 야당 지지 유권자가 투표장을 더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는 모든 응답자의 응답이 동일한 값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면에 있는 유권자 성향에 따른 투표 강도(strength)가 반영되지 못한다.
물론 이 밖에 기술적 문제도 지적돼야 한다. 현재 통상적인 여론조사 방법인 가구전화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대중의 라이프스타일과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의식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활동이 강한 사람일수록 다소간 진보적 성향일 수 있다는 가설이 있을 수 있다. 가구전화는 낮과 초저녁에 집에 있는 응답자들이 주로 표집되기 때문에 이들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사람이 배제될 수 있다. 따라서 표집되는 사람들이 전 인구의 성향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 인터넷전화 보유 가구와 일반 전화가 없는 가구들이 표집틀에서 제외되는 것도 정확한 여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