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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MB’ 기치 아래 진보진영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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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에 빠진 6월 정국 화두… 반정부 투쟁 정부 여당에 큰 부담

지난 6월 10일 서울광장이 열렸다. 서울광장에 10만 명(경찰 추산 2만2000명, 주최 측 주장 15만 명)이 모여 ‘촛불잔치’를 벌였다. 민주당 등 야당과 50여 개 시민·사회·노동단체, 4대 종단의 종교단체 등이 ‘6월항쟁계승민주회복범국민대회’(범국민대회)를 연 것이다. 경찰과 주최 측의 ‘숫자놀음’에 따라 범국민대회의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촛불은 “(쓴 소리를 하는 사람에 대한) ‘배제’와 (민심을 무시하는) ‘독주’ 그리고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을 태웠다는 게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생각이다. 이것은 국민이 정치권에 던지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10범국민대회 성패를 떠나 향후 정국의 화두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6·10 범국민대회가 전환점 역할

6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안상수 원내대표와 장광근 사무총장이 귀엣말을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6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안상수 원내대표와 장광근 사무총장이 귀엣말을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하지만 이런 요구는 당위성을 떠나 이명박 정부가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기조와 국정 운영 방향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자기부정을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6·10항쟁 22주년 기념사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사표 처리 과정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임 전 총장의 확고한 사퇴 의지를 확인한 뒤에도 “임 총장의 번의를 권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정 쇄신 요구를 거부한 정치적 행위였다.

이런 상황 인식에 대해, 범국민대회를 6월 임시국회는 물론 10월 재·보선, 멀게는 내년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정국지형의 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만들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올 6·10대회를 통해 민주개혁 진영이 하나가 됐다. 야4당이 함께 했기 때문에 시민 여러분이 박수를 보내주셨던 것 같다”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발언은 그런 정세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과 맞물려 열린 범국민대회를 주도하고 ‘반MB(이명박) 연대’의 중심에 섰음을 은근히 과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범국민대회는 정국 구도를 ‘친(親)정부 대 반(反)정부’의 대결로 압축시킨 하나의 계기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국 향배를 일순 신·구 정권의 정면 대치로 몰아갔다. ‘신구대결’ 전선의 핵심은 권위주의 해소와 소통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와 스타일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친재벌적 조세·기업정책’ 철회,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포기, ‘미디어법’ 폐기, ‘공안통치’ 철회 등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서 제기됐다. 진보 진영의 연대가 반MB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반이명박 전선의 중심에 민주당이 서게 됐다. 과거엔 보수·진보 간 이념 대결이 주를 이뤘으나 이명박 정부의 지지 여부에 따라 친이-반이로 정국 구도가 급속도로 재편되는 쪽으로 양상이 바뀌면서 민주당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한나라당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6·10대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문제 때문에 진보 진영 내부의 세력싸움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면서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은 서울광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서울광장 차단과 민주당 의원이 주도한 서울광장 천막 철야농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MB악법 당장 철회” 목소리 높여
‘조문정국’에서도 야당과 시민단체 사이엔 신경전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 계승을 선언하고 상주노릇을 한 데 대해 ‘민주당이 그럴 자격이 있나’라는 시민단체의 비난도 그중 하나다. 민주당이 범국민대회를 통해 이런 비난을 잠재우고 진보 진영 연대의 중심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6월 국회의 ‘입법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 진영 연대라는 자원은 민주당 입장에서 소중한 재산이 됐다. 민주당은 미디어법과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기로 한나라당과 약속한 바 있다.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었던 법안합의처리 약속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민주당이 “6·10대회는 곧 민심”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6·10대회에)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파가 모였다”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는 민주당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에게 에너지를 받은 장외정치 역시 원내정치를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당이 말하는 ‘MB악법’ 저지를 비롯한 국정 기조와 국정 운영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정세균 대표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MB악법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더 높은 수위의 압박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6·10민주항쟁 범국민대회가 열린 10일 서울시청 부근에서 시민들이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6·10민주항쟁 범국민대회가 열린 10일 서울시청 부근에서 시민들이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민주당은 범국민대회를 ‘시한부 광장정치’라고 규정했다. 대회 이튿날부터 6월 임시국회 일정 협의에 나서 “(장외투쟁에 매달려) 정국 수습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진화시키려 애쓰기도 했다. 민주당은 또 6월국회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던 5대 요구사항 중 청와대를 겨냥한 두 가지 항목(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과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책임자 처벌 및 인적 쇄신)을 제외시켰다. 남은 세 가지는 박연차·한상률 특검, 정치보복 국정조사 실시, 국회 검찰개혁특위 신설이다. 이른바 ‘2+3분리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대응은 이중적이다. 여야 원내대표 회담 개최에 동의하고 회담에 참여했지만, 일각의 기대 섞인 전망과 달리 이것이 곧 국회 개회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장외투쟁의 길을 막아버린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6·15남북공동선언 문화행사 참석을 결정한 상태다. 물론 당론이 아닌 의원 개별적 의사에 따른 참석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정치·사회적 일정만 고려한다면 6월의 정치 환경은 민주당에 유리하다. 범국민대회에 이어 효선·미선양 추모 7주년 기념대회와 화물연대의 상경투쟁(6월 13일), 6·15남북공동선언 문화행사(6월 14일), 6월 중순 금속노조 전면 파업과 하순 공무원노조간부결의대회 등 도심 장외집회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6·10민주항쟁 등 정치·사회적인 이슈와 맞물려 하투(夏鬪)가 진행될 경우 그 파괴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여권 내에서 반정부 투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는 한나라당이 정국 수습의 공을 넘겨 받은 모양새다. 반정부 투쟁은 정부 여당에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범국민대회 참석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6·10항쟁 22주년을 맞이해 야당이 벌인 정치 굿판은 별다른 흥행을 거두지 못하고 끝이 났다”고 평가절하한 뒤 “길거리 가투 형식의 정치를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했다. 안상수 대표는 “6·10대회는 좌파 세력이 총집결한 그들만의 잔치”라면서 “서울광장에서 수거한 자료들을 보면 그야말로 반정부 구호, 이명박 정권 퇴진 구호가 난무했다”고 말했다.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 비판 일색이다.

집권 여당 풀어야 할 숙제 산적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은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경제살리기’가 부담이다. 이 문제는 또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이 경제 회생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며 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를 공격하는 배경이 된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인한 남북 긴장 고조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이뿐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불편한 관계가 여전한 것도 정국 운용의 장애 요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할 한나라당은 아직도 4월 재·보선 완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거 패배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출범한 쇄신위(위원장 원희룡 의원)도 계파 갈등의 프레임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궁여지책으로 ‘민생국회’라는 구호를 내건 뒤 맞불작전을 통해 민주당의 행동 반경을 국회로 좁히려는 의도를 드러낸 게 고작이다. 이를테면 ‘강(强) 대 강(强)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6월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6월 국회에서 처리할 ‘시급한 30대 법안’을 선정했다. 여기에는 방송법·신문법 개정 등 미디어법 4법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개정안 등 비정규직 3법,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회가 열리면 의석 수 우위를 바탕으로 야권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무엇보다 먼저 ‘조문정국’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홍으로 인해 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마냥 민심과 동떨어진 강공드라이브를 지속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기류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전격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진행되고 있는 정국의 소용돌이는 한국 정치의 특징 중 하나인 정체성 정치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여야 모두 정책을 말하지만 내용은 이념을 앞세운 당리당략이다. 이 점에서는 여야가 똑같다. 한마디로 변형된 패거리정치다. 차이와 창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다름을 배척하고 차별한다. 관용이 없다. 국민은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켜본 뒤 다시 민심을 드러낼 것이다. 민심이 여야의 어떤 정치적 선택을 요구할지 궁금하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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