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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시국선언, 민주주의 후퇴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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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한 사회현실 우려 역사상 가장 많은 교수 참여

1991년 학생들의 잇단 자살은 민주 개혁을 외면한 당시 정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골자의 시국선언을 하는 서울대 교수 55명. <경향신문>

1991년 학생들의 잇단 자살은 민주 개혁을 외면한 당시 정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골자의 시국선언을 하는 서울대 교수 55명. <경향신문>

5년 만에 부활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6월 3일 서울대 교수들이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시국선언을 시작한 뒤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수들은 95개 대학 4500명이 넘었다. 교수사회만이 아니다. 재야 사회단체와 종교단체는 물론 대학생의 시국선언도 잇달았다. 심지어 청소년 시국선언도 역사상 처음으로 나왔다.

“대중여론 반영 최종 정리 의미”
시국선언은 지식인 사회의 시국 인식을 상징한다. 교수 시국선언은 지금 그 나라의 시대 상황이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야기했거나 그런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교수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정권을 비판한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이라크 파병, 송두율 교수 구속 등 각종 현안이 있을 때 시국선언문이 발표됐다. 물론 22년 전 6·10민주항쟁 때도 시국선언이 있었다. 1987년 호헌반대 선언이 그것이다. 이 선언은 5공정권을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는 한 TV토론에서 “교수 사회는 지식인 사회를 대표한다”면서 “그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선언적 규정을 하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시국선언은 사후적 규정이다. 통상적으로 사회를 향한 교수들의 집단적 발언은 뒤늦게 나온다. 행동보다는 성찰과 분석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그렇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결과를 통해서 원인을 추정하는 것이니만큼 대국민 호소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단국대 ㅇ교수도 “선언적 규정이지만 대중의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후적으로 사회 혼란상을 정리하는 의미를 갖는다”면서 “국민들에게도 오죽하면 교수들이 나서겠느냐는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온 각종 시국선언들은 구체적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선언문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거부와 항의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현 정부가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등 지난 20여 년간 일궈놓은 민주주의를 일거에 퇴행시키고 있으니 이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또 국민과 소통하는 방향으로 국정 운영을 쇄신하라는 촉구도 빠지지 않았다.

시국선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됐지만, 그 밑바탕에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국민이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뤄낸 민주주의가 최근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는 급박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의 이야기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 기조와 소통 부재에 대한 우려도 함께 배어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발원지였던 22년 전 6·10민주항쟁 때 나왔던 것과 현재의 시국선언의 형식과 내용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6·10민주항쟁 땐 초반기와 6·29선언 이후의 시국선언 형식이 달랐다. 초반기는 교수연합 시국선언이 주종을 이루다가 나중엔 대학별로 시국선언이 이뤄졌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과 함께 최초의 교수 시국선언문인 교수연합시국선언문 초안을 작성했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한신대 경영학 교수)은 “대학교수연합회 창립기념식도 예약된 식당(평양면옥)에서 할 수 없어서 길거리에서 선언문만 낭독했다”면서 “당시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의무감과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숫자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릉대 김태영 교수(사회학)도 “권위주의 시대 때 양심적 발언을 하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면서 “지식인 사회가 시국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시국선언을 할 수 있게 된 게 바로 20년의 격차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교수연합 시국선언문의 핵심내용은 호헌 철폐와 직선제 실시였고 개별대학 시국선언은 사회민주화 요구에 집중됐다. 당시의 내용 역시 국민주권과 같은 기본적인 수준의 요구를 담았다는 게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의 일치된 얘기다.

2009년 시국선언도 기본적 요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많은 교수의 시국선언 동참이라는 의미는 결코 평가절하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새로운 변화를 위해 크게 꿈틀거리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었던 1987년 민주항쟁 때 시국선언에 나선 교수는 불과 5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시국선언 자제를 촉구하는 시국선언
물론 시국선언을 둘러싼 갈등도 전개되고 있다. 보수 진영이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시국선언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맞불을 놓고 있어서다.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 128명은 시국선언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중앙대 ㅇ교수는 “중앙대 교수가 1000명에 육박한다”고 전제하고 “시국선언에 나선 67명의 시국인식에 중앙대 전체 교수가 동조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시국선언 파장이 확대되자 시국선언 내용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22년 전 시국선언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단국대의 한 교수는 “정말 민주주의가 시국선언에 담을 정도로 퇴보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적어도 그렇다면 교수들은 연구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 된다”라고 말했다. 시국선언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서울대의 한 교수도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시국선언에 대통령에게 사과하라는 내용 같은 것을 포함시킨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설령 검찰의 과도한 수사와 언론플레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현직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문제냐라고 반문한 것이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지식인 사회의 평가가 나뉘어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시국선언 참여 교수와 시국선언 반대 교수의 숫자가 크게 차이나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시국선언 반대 교수가 대체로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고, 이명박정부가 보수정권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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