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학회가 지난 11월1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간도 및 재중국 조선족 문제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북방 문제를 주로 다루는 백산학회에서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아 연 학술대회였다. 발표 내용의 절반은 간도 영토 문제, 나머지 절반은 조선족 문제를 다뤘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이석우 인하대 교수(국제법 전공)는 “간도영유권에 있어 핵심적 문제는 간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흔히 간도영유권을 이야기하면 땅덩어리에만 집중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땅이고, 언제 청나라와 국경회담을 했고, 그 기준에 의하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해는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간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우리의 말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중국인이지만 이들의 모국은 한국이다. 이들이 없다면 간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다.
땅 중심이 아니라 간도에 살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영유권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발해가 망한 후에 간도에는 말갈족-여진족-만주족으로 이름이 바뀐 부족이 자리잡았다. 이들 부족은 청나라를 세우고 1644년 수도를 심양에서 북경으로 옮기면서 간도 지역을 떠났다. 사실상 무인지대가 된 것이다. 이때 조선에서는 백성들이 몰래 이곳에 산삼을 캐러 다녔다. 청에서는 만주족의 발상지인 이 지역을 봉금지역으로 설정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17세기 이후 실질적으로 영토 점유
1860년대에는 함경도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 조선 백성이 대거 간도로 이주했다. 1880년대 들어 청나라는 청 전통의 머리와 옷 차림을 하지 않을 경우 쫓아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1885년과 1887년 양국이 국경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 우리나라에서는 간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범윤을 간도시찰사로 임명해 파견했다. 그러나 1909년 간도협약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 조선 백성들은 졸지에 남의 나라 땅에 사는 이방인이 됐다.
1945년 일제가 망했으나 간도 땅의 백성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면서 중국 백성이 됐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이들은 1952년 조선족 자치주를 세워 우리나라 글과 문화를 이어왔다.
간도영유권에 대해 조선족 학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중국의 논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논리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17세기 이후 텅 빈 간도를 개척하고 대거 이주해 실질적으로 영토를 점유한 것은 조선 백성들이고 바로 이들이 조선족의 조상이다. 이들의 조상은 새로운 땅을 찾아 무인지대에서 농토를 개간한 것이지 청의 영토 안에서 몰래 일한 것이 아니다.
1992년 한·중 수교로 조선족은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됐다. 수많은 조선족이 한국 땅에 일을 하러 왔다. 또한 많은 한국인이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방문했다. 여러가지 문화 교류도 이뤄졌다. 뿌리가 같음을 확인하는 행사도 있었다.
간도영유권은 과거 문제이자 앞으로 통일 이후 닥칠 미래 문제이다. 여기에는 항상 조선족 문제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땅만 생각하면 큰 것을 잃을 우려가 있다. 땅은 어쩌면 차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곳에 뿌리 내린 간도의 역사,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문제가 땅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